▶ 사람사는 이야기/KCS 문화센터 원장 최창옥 화가
25년간 아름유치원 운영하며 어린이들 지도
20여년 전부터 KCS서 봉사…가르치는것 천직
외로운 이민자들에 활력·행복 찾아줘
매년 합동전시회, 작년판매대금은 선교기금으로
30여년 전 이민 온 맞벌이부부들은 아름미술학원, 아름유치원이 이민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였다. 또 20여년 전부터는 한인성인 및 노인들에게 삶의 기쁨을 주고있는 최창옥 화가를 만나본다.
●삶을 같이 나누자는 것
퀸즈YWCA, 뉴저지AWCA, 롱아일랜드 뉴감문화센터에 이어 현재 KCS 문화센터 원장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키워온 최창옥 화가. 그는 자신의 일을 “ 삶을 같이 나누는 것이다.”고 말한다.
그의 미술 수업은 우선 재밌고 유익하다.
“이해인 시인의 시집, 신문 칼럼이나 목회자들의 칼럼, 특히 강준민 목사의 저서 ‘아름다운 행복’ 한 대목을 프린트로 카피하여 나눠가진 후 다같이 읽고 기도 한 다음 공부를 시작한다. 삶을 나누라는 주님과의 약속이다. ”
최창옥은 “수업을 통해 공통점을 찾아 서로 위로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 스스로 웃음이 쏟아지는 수업 분위기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수업 시작이 이렇다보니 바쁜 일이 생긴 학생은 30분간 이 시간만 참여하고 가기도 한다고.
“우리는 기술반, 입시반도 아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누구하나 알아주지 않으나 동생 테오와 편지로 대화를 나누며 화폭에 붓 터치를 통해 자기감정을 쏟아부었다. 고흐 작품을 묘사하면서 터치를 배우고 나의 감정을 캔버스에 접목시키는 연습을 하게된다. 우리 이민생활은 소통, 대화가 필요하다. 그림을 통하여 감정을 쏟아부으며 작품을 하게된다.”
그는 클래식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고, 방에 콕 박혀 있는 사람들을 밖으로 나오게 해 긍정적 행복의 삶을 찾게 해주고자 한다. 시어머니가 집에만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와 그림을 그리다 가면 며느리와의 고부 갈등도 없다는 것. 실제로 한 여성이 그에게 그림을 배우면서 우울증과 불면증을 고친 사례가 있다.
최창옥은 데생, 수채화, 아크릴화, 유화 등을 일정기간 가르친 다음 가장 잘 그리는 자를 리더로 키워서 별도 팀으로 독립시킨다. 이렇게 퀸즈장로교회 수채화팀, 만나교회, 아름다운 교회, 성소교회, 뉴욕감리교회 등 교회 사모나 주재원 부인 그룹 등이 만들어졌다.
2004년부터 지도해 온 KCS 문화센터는 수요일 오전에는 시니어 무료미술반이 운영되고 월~금요일은 159가 KCS본부 3층 미술실에서 남녀취미반이 열리는데 KCS건물기금으로 약간의 수강료가 있다.매년 합동전시회를 열며 작년에는 작품 판매대금 일부가 아이티 선교기금이 되었다.
그동안 제자들은 코리아빌리지 오픈센터에서 ‘그림 동우회 작품전’, 천 갤러리에서 ‘우정의 만남전’ 등을 열어 바쁘고 각박한 이민생활에 잠시 쉬어가는 쉼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칭찬에서 칭찬으로
1947년 충남 대전에서 2남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최창옥은 초등학교 2학년때 아버지가 돌아가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9살 차이가 나는 형이 대전사범 미술반에 다닐 때 최창옥 소년은 형의 야외실기 사생을 따라다니기도 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 형의 그림물감을 몰래 가져가 교내미술대회에 출품한 작품이 덜컥 특선이 되고 말았는데 이것이 자신감을 갖게 했다.
“자신감은 상당히 중요하다. 칭찬에서 칭찬으로 수업이 끝난다. 주부들 중에는 밤새워서 그려오는 사람도 있고 숙제보다 많은 양을 그려오기도 한다. 이럴 때 힘을 빼라고 말한다. 욕심이 그림에 나타나면 안된다. ”
그로 하여금 평생 그림을 하게 한 형은 정작 교사를 하다가 현재 시인이다.
“집안이 워낙 가난하다보니 미술학원을 다닐 수 없었다. 동네에 석고공장이 있었는데 자주 놀러가서 석고물 붓는 것을 도와주는 등 잔일을 해주면서 아그립파, 줄리앙 만드는 것을 옆에서 보았다. 자연히 석고 데생에 대해서는 동기나 후배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솜씨가 뛰어났다. 집에서 가까운 대전극장의 영화 간판 그리는 것도 열심히 참관했다. ”
형을 따라 전시회 구경을 다니며 관심이 반복되다보니 소질이 되었다고 한다.
최창옥은 대전고등학교 2학년때부터 학생들의 데생 지도를 시작했고 65년 졸업 후 서울로 올라왔다. 미술관련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72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73년 ~81년 중앙대학교사범대학 부속여고 미술교사를 했다.
그가 미국에 온 것은 81년, 여학교 미술교사 윤길섭과 결혼 후였다. 처가가 있는 볼티모어에서 1년 반 지낸 후 83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브루클린 릿치우드에서 살았는데 같은 아파트 3층에 교회 김장환 목사가 여러모로 그의 가정을 보살펴 주었다.
“친구 야채가게에 일을 도와주러 나가 하루 일했는데 목사님이 최선생의 전공을 살려보자며 미주매일신문으로 함께 갔다. 도안실장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이 여러 언론사에서 일하며 토요일에는 미술학원을 열었다.”
처음 해바라기 유치원(곽상희 시인 운영)에서 소수인원 그룹으로 시작했다가 88년 고등학교 친구 도움을 받아 900스퀘어피트 규모 아파트 1층에 토요미술학원을 열었다. 그는 저녁마다 자신의 작품을 할 생각을 하자 마치 꿈만 같았다고 한다.
“수강생이 너무 많았다. 토요일 하루 70~80명이 몰리고 오후에 대학입시준비반을 시작하자 2명의 강사도 채용해야 했다. 학부형들이 아이를 주중에도 봐달라고 했고 아내가 정식허가를 받아 플러싱 샌포드애비뉴에 아름유치원을 열었다. 2~5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25년간 운영했고 2년전 문을 닫았다.”
당시 3만달러정도면 네일가게를 열었고 아침부터 저녁늦게까지 맞벌이를 하는 한인들은 아이 맡길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던 차였다.
●넘치는 이민 스토리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을 돌보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어느 어머니는 자기 아이 생일파티를 꼭 해주고 싶다고 하여 했는데 며칠후 암으로 죽었다. 그 아이는 하버드 대학을 나와서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 점차 이혼하는 부모들도 늘어나 아이의 성이 박씨에서 이씨로 바뀌기도 하고, 목에 열쇠고리를 걸고 다니는 아이를 부모가 아직 오지 않은 집에 데려다주면서 마음이 아팠다.
유치원 밖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놀다가 팔이 빠졌는데 학부모가 고소한 일도 있고...원생들은 이태리, 스패니시, 인도네시아, 인도, 월남, 나중에는 중국어린이까지, 18개국 어린이들이 모였다. 이민사회 역사를 그대로 지켜본 셈이다. 아름학원을 운영한 일은 이민동포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었고 보람 있게 했다고 자부한다.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한다.
그는 학원을 운영하면서 저녁이면 틈틈이 그림을 그려 1995년 소호의 BAI 갤러리에서 작품 40여점을 출품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1996년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7일간 초대전을 했고 대한민국 미술협회 회원을 비롯, 공모전에 출품했다. 뉴욕한인현대미술협회전과 워싱턴 미술가협회전시회 등 다년간 참여했다.
최창옥이 KCS와 인연을 맺은 것도 1991년 아름학원에서 사용하던 밴을 기증하면서였다.“ KCS가 점심 프로그램을 하는데 독거노인에게 배달할 차가 없다는 기사를 보았다. 아이들을 픽업하던 15인승 밴을 기증했다.” 이후, 그는 또 한 대의 밴을 기증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최창옥은 윤길섭과 슬하에 1남1녀를 두었고 아들은 회사원, 딸은 초등학교 교사로 성장했고 외손녀 한명이 있다.
“81년 미국에 이민하여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다. 자신도 응용미술을 전공했는데 나를 위해 희생 했다. 50명 원아들의 점심과 애프터스쿨 간식까지 다 맡아 해주었다. 고마운 사람이다.”
“가르치는 것이 천직이라 생각한다. 안가르치고 다른 것을 했으면 내 얼굴이 상상도 못하게 늙었을 지 모른다. 아마 이민생활을 도중하차하고 한국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제자들이 많아 좋다. 주위에 아름다운 사람이 많아 좋다.”
항상 허허 웃는 소박한 사람 최창옥 화가, 그는 “올해 어르신 수강생 중 80세 기념 전시회를 준비시켜 드리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2018년 개인전을 준비하는 해로 하겠다”는 올해의 계획을 밝힌다. 그는 오늘도 캔버스에 붓을 대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알록달록 아름답게 색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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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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