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한잔의 초대 /김태자 전 세종솔로이스츠 이사장
주미대사인 아버지따라 미국행
줄리어드서 정경화·백건우 등과 함께 대학생활
좋은부모·좋은교육 등 남보다 많이 가졌다고 생각
차세대음악인 발굴·후원으로 보답
30여년간 차세대 한인연주자를 발굴, 뉴욕 데뷔무대를 후원해온 김태자 전 세종 솔로이스츠 이사장, 줄리어드 출신 1세대 한국 음악인으로 최근 백건우-뉴욕필하모닉 협연‘ 후원회 회장으로 성공적인 공연을 치른 그의 행보는 끝이 없다. 그의 삶을 들어본다.
●30여년간 수많은 한인음악가 후원
“너무 좋았다”, “잊지못할 공연이었다“ 지난 12월 초순 뉴욕한인들은 성탄선물을 미리 받았다. 링컨센터 데이빗 게펜홀에서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한 백건우의 연주로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3번 C단조 작품번호 37’을 들었던 것, 이 연주회를 태동시킨 이가 바로 김태자 전 세종솔로이스츠 이사장이다.
“뉴욕일원 한인 커뮤니티가 보여준 뜨거운 티켓 파워에 뉴욕 필이 만족해했다. 이렇게 한국 음악인들과 뉴욕필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만들려면 한인커뮤니티의 지원이 필요하다.”
김태자는 성황리에 막 내린 이 공연을 성사시켰을 뿐 아니라 지난 30여년간 수많은 차세대 한인연주자들의 뉴욕 데뷔 무대를 후원해왔다.1944년 2월 서울 돈암동에서 3남2녀의 장녀로 출생한 김태자는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등 집안이 모두 군인인 집안에서 엄하고 보수적이나 자애로운 교육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는 공군과 공군사관학교 창설멤버이자, 국방부장관, 국무총리, 주미대사를 지낸 김정렬씨고 삼촌은 6.25전쟁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폭격의 위기에서 구한 김영환씨다.
할아버지가 식민지 조선의 마지막 이왕(영친왕)을 보필하여 일본 육사를 다니던 시절 할머니는 일본에서 꽃꽂이를 배웠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군에서 나온 할아버지는 배재고 선생을 했고 할머니는 일본에서 꽃을 사와서 조화를 만든 다음 일본으로 역수출, 나중에는 한국최초로 면사포 쓰고 하는 신식웨딩홀인 만화당을 시작했다.
“할머니는 새벽에 신문을 다 읽고 중요한 부분을 빨간 줄로 표시한 다음 아버지가 아침을 먹는 동안 그 부분을 읽어주셨다. 당신이 돈을 버시니까 아들에게는 청렴결백을 늘 강조했다. 아버지는 4.19가 일어나며 대부분의 각료들이 감옥에 가도 무사했다. 언젠가, 밀가루 한 포대를 누군가 집에 놓고 간 적이 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더니 이게 뭐야 물으신 후 밀가루 포대를 발로 뻥 차버리셨다. 온 집안이 밀가루 가루로 하얗게 뒤덮힌 기억이 난다.”
밀가루가 눈처럼 내리던 어린 시절 한 때를 떠올리며 미소짓는 김태자. ‘남한테 필요한 것을 주어라. 항상 베풀며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고 한다. 외가는 예술가쪽이라 친척중에 한국화가도 있고 특히 외삼촌은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 작사가인 이경재씨다.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음대에 입학한 지 두달 후 주미대사로 발령난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간 김태자는 뉴욕 줄리어드 피아노과에 들어갔다.
●“언젠가 우리도....”
부모님과 동생들은 워싱턴DC에 있고 김태자는 홀로 뉴욕에서 미국가정 홈스테이를 하다가 대학2학년때부터 학교근처 빌딩에서 한국학생들과 룸메이트로 살았다. 당시 줄리어드에는 피아노 김정자, 바리톤 김진기, 성악 채리숙, 피아노 이대욱, 바이올린 강동석, 피아노 백건우, 정경화 정명화 정명소 세자매 등 선후배, 동료들이 있었고 이들은 훗날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연주자 및 대학교수가 되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집안이 어려운 친구에게는 옷을 지어 입히는 등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좋았다는 그는 줄리어드 남자 선후배들이 유럽과 이태리의 경연대회 출전 혹은 초청연주시 군대 문제로 여권연장이 안되자 대통령한테 편지 쓰기, 워싱턴 정가 문명자 기자에게 부탁하기 등등 발로 뛰어다니며 문제들을 해결해냈다.
“그때 정순빈 언니가 가장 언니였고 현재 세종 음악감독 강효가 줄리어드 동기동창이다. 유학생이던 우리는 한국명절날 모이면 재단이 있으면 좋겠다고 늘 얘기했었다. 그때 일본파운데이션이 일본학생들의 무대를 후원해주고 공연후 스시 먹으러가는 것도 부러웠다. 우리도 언젠가 한국에서 서머캠프가 열리면 학생들을 가르치고 맛있는 한국음식도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김태자는 63년~69년 줄리어드음대와 대학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69~71년 워싱턴DC 가톨릭유니버시티에서 피아노 교육학 석사를 받았다. 그의 오랜 꿈이 실현된 것은 신경방사선과 이승호 전문의와 결혼후 시라큐스에 살다가 1982년 남편의 근무지인 뉴저지지역 병원으로 이사오면서 서서히 익어가기 시작했다.
●한국음악재단과 세종솔로이스츠
먼저 김태자는 뉴저지집 지하를 70여명 규모의 콘서트홀로 만들어 당시 바이올린 김지연, 차이스콥스키콩쿨 성악1등 최현수, 피아니스트 서혜경 등의 연주회를 치렀다.
“콘서트를 열면서 재단을 만들테니 돈 달라는 얘기를 차마 못했다. 3회째 콘서트가 열리는 날 남편이 먼저 얼마를 도네이션 하겠다고 쓴다음 종이를 돌렸다. 그렇게 이사가 모집됐다. 한국음악재단의 첫번째 행사가 앨리스털리홀에서 연 백건우 베네핏 콘서트다. 파리에서 와서 해줬다.”
84년 성악가 이순희, 바리톤 김학근, 의사 김마태, 차태웅, 김태자 등은 한국음악재단을 설립했고 이후 강동석, 김영욱, 김대진, 배익환, 데이빗 김, 양성원 등 재능있는 한국인들이 머킨콘서트홀과 카네기홀 웨일홀의 뉴욕 무대에 잇달아 등장했다.
김태자는 한국음악재단의 총무, 재무를 맡아 10년간 봉사했고 94년 12월 줄리어드스쿨 바이올린 강효 교수와 함께 세종 솔로이스츠를 삼성문화재단의 후원으로 시작, 단장을 맡았다. 2003년에는 대관령 음악제도 시작했다. 드디어 학창시절 캠프에서 가르치면서 한국음식도 먹고싶다던 꿈이 실현된 것이다.
당시 박영길 뉴욕문화원장이 ‘세종’ 이란 이름을 지어주었고 에스펜뮤직에 초대된 세종은 활약 3년만에 굴지의 매니저먼트회사 ICM과 계약이 되었다. 현재 솔로이스츠는 세종대왕의 이름을 국제무대에 알리고 있다. 1995~1999 세종 단장, 2000~2004년까지 이사장으로 봉사한 김태자는 2014년 9월 유엔총회 기간동안 유엔에서 백건우 독주회를 주선하기도 했다.
●음악가는 혼자는 절대로 안돼
“바이올린이나 독주자들도 챔버 뮤직을 해야 한다. 챔버 뮤직을 해봐야 자신의 귀에 다른 사람의 음악이 들려오고 밸런스가 있어지면 정말 음악이 되는 것이다.”
김태자는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피아노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가르치고 나누는 일이 더 좋아졌고 “젊은 아이들을 보는 것이 참 좋고 후원 일이 뜻깊다”며 그들의 무대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어려서부터 할머니 솜씨를 이어받아 옷도 직접 만들다보니 세종 솔로이스츠 공연시 단원들 옷을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다. 요즘은 5명의 손자손녀 핼로윈과 크리스마스 옷 만들어주는 인기 짱 할머니다.
큰딸 지연은 하버드대와 런던대 경제대학원을 나와 소셜팔리시 메이커이고 작은 딸 지은은 하버드대와 옥스퍼드대, 하버드 MBA 출신이며 손자손녀가 5명이다. 딸들이 줄리어드 예비학교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배우던 시절 한국학부모들이 모인 ‘보람회’ 초대회장으로 학생들을 번갈아서 카네기홀 웨일홀에서 연주회를 열어준 것도 그답다.
“남보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좋은 부모, 좋은 교육, 복이 많았다. 아버지가 주미대사시절 한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외국 대사 등 손님이 관저에 오는 날은 온 식구가 총출동하여 준비를 했다. 어머니는 늘 부엌바닥에서 고기를 잘랐고 나는 신선로 육전 담당, 동생들은 청소와 가구를 닦았다.”
김태자는 가정에서 배운 봉사정신으로 차세대 음악인을 후원했고 현재 한인커뮤니티재단(KACF) 상임이사이기도 하다.
“음악가는 혼자서는 절대로 안된다, 뚯있는 사람들이 같이 모여 일이 성사되도록 도와야 한다. 재단이 필요한 이유다. 실내악단 운영자금 마련에 기업과 독지가의 지원이 필요하다. 젊은 한인음악가들을 미 주류 음악계에 진출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태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을 비롯 뛰어난 한국인 음악가가 계속 나오고 있어 앞으로도 뉴욕 필을 비롯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한국인의 협연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고 한다. 아담한 체구의 그가 인터뷰가 끝날 즈음 거인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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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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