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떠난 후 문밖에서 서성이던 겨울을 서둘러 들여 놓고도 그동안 겨울 같지 않은 날씨에 너무 방심 했었나보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화들짝 놀라 외투 깃을 한껏 치켜 올리며 출근길을 서둘렀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따라 흥얼거리다 어느새 한 해의 끝자락을 붙잡고 아슬아슬하게서 있음을 실감했다. 아쉽고 허전한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거나, 비어 있는 숲으로 낮은 비행을 하는 새들을 쫓아 겨울 속으로 따라 들어가며, 이것이 나의 일상이고 우리의 몫이라 믿기로 한다. 찢겨져 나간 11장의 달력처럼 지나간 순간은 과거라고 이름 붙여져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운이 좋아 다시 같은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맞설 용기가 없거나, 이리저리 눈치 보는 사이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알고 또 다시 회한에 젖을 것이다. 성탄을 앞두고 회색빛 도시는 다시 활기를 띄고 어둡던 골목길은 집집마다 제각각 내 건 크리스마스 장식들로 따뜻하고 정겹다. 잎을 내린 앙상한 나뭇가지에는 화려한 오색 전구가 타고 올라가 꽃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계절이 되었다.
문득 오래된 흑백사진 속 내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 풍경이 떠올랐다. 너 나 없이 궁핍하던 시절, 그 때의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었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도 잘 모르는 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소년이 있었다.
거리에 캐럴이 울려 퍼지고 동네의 작은 교회의 앞마당에 오색전구로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이 켜지면 멀리서 훔쳐만 보아도 가슴이 떨렸던 소녀와 짝꿍이 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어둠속에서 신비롭게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와 며칠이나마 착한아이가 되게 하는 산타클로스는 소년이 믿는 유일한 종교였다. 명절이나 생일에 받는 선물과는 비교할 수 없게 설렘을 주는 선물에 기대가 컸지만 산타는 늘 소년이 자는 사이 몰래 다녀갔다.
열두 색의 크레파스를 기대했지만 소년의 머리맡에는 크레파스 대신 키보다 더 큼직한 바지와 앞으로 2~ 3년은 족히 입을 수 있는 묵직한 스웨터가 놓여있었다. 저녁 무렵, 이웃집을 찾아 다니며 문 앞에서 캐럴을 불러주던 동네아이들의 노랫소리에는 궁핍한 살림살이에도 무언가 대접하게 만드는 정이 있었다.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점점 가까이 들려오는 노래 소리를 들으며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우리 집을 그냥 지나칠까봐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명절 때마다 반복해 보던 흑백 영화처럼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놓지 않고 찾아와 준 하느님께 어린마음에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따뜻한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워지는 추운겨울 가족이나 이웃이 나누어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주는 사랑과 은총이 반가울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신의 은총은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가장 절박한 법이다. 50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소년의 오랜 기억 속에서 빛바랜 채 서있던 크리스마스트리에 오색전구를 달아 거실 한 켠에 세워두기로 한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산타가 되는 꿈을 꾸는 소년을 만난다. 겨울은 모두에게 같은 몫으로 온다.
누구에게나 가장 힘든 겨울은 한번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습의 겨울나기를 하게 될 것이다. 한 해를 마감하며 소중한 가족과 이웃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Merry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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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전 커네티컷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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