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악마를 보았다’(2010년) 라는 범죄 스릴러 영화에서 극 중 연쇄 살인마(최민식)는 주인공(이병헌)의 약혼녀를 죽인다. 악마 같은 놈에게 일상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긴 주인공은 더 잔인한 악마가 되어 그에게 복수를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않든 다양한 사람들과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예를 들어 행인이 내 어깨를 툭 치고 가거나 누군가가 내 험담을 하면 순간 기분이 상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때로는 잔잔한 일상과 감정을 소용돌이치게 하는 사건들도 생긴다. 많은 경우 타인들과 사회로부터 받는 정신적 상처와 스트레스가 제일 견디기 어렵다. ‘사람이 제일 무섭다’거나 ‘세상이 갈수록 팍팍하다’는 말들이 나오는 배경이다.
비록 세상살이가 녹록치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종종 잊고 사는 것이 있다. 전혀 기대하지 못한 상황에서 타인들의 친절과 도움을 상당히 많이 받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런 사실을 평소 잘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의 기억 메커니즘이 섭섭한 일은 몇 년이 지나도 기억하면서 고마운 일은 상대적으로 쉽게 생각하거나 금방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리라.
우리 사무실에는 늘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직원이 한 명 있다. 우연히 그 직원과 마주치면서 밝은 인사를 받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나곤 한다. 그 직원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그 사람으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 ‘덕분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져’라고 고마움을 표한 적이 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돌발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어디선가 천사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주기도 한다.
작년 미얀마에 놀러갔을 때 일이다. 스쿠터를 타다 한 가게 앞에서 넘어져 다리에 상처가 났다. 이를 목격한 가게 직원이 나를 안으로 안내하더니 상처에서 나는 피를 알코올 솜으로 연신 닦아주었다.
그 직원은 여사장을 불렀고, 여사장은 자신의 남편을 불러 날 의원에 데려다 주고, 약도 사주고, 심지어 기념품까지 선물로 주었다. 단지 자신의 가게 앞에서 다쳤다는 이유만으로.
올해 이탈리아에 놀러갔을 때는 열쇠를 건네주기로 한 에어비앤비 주인이 약속시간을 어긴 데다 내 핸드폰 배터리도 거의 없어서 낯선 밤거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으로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멕시칸 부부가 다가와 무슨 일인지 물어보더니 선뜻 자신의 핸드폰을 빌려줬다. 그뿐 아니라 그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30분이 넘도록 함께 기다려 주었다.
이렇게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선뜻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은 아직 따듯하고 살만 하구나’하는 걸 새삼 느꼈다. 친절과 도움은 아주 작은 것이라도 당사자에게는 크게 와 닿는 법이다. 밝은 미소, 작은 배려, 타인의 실수를 감싸는 관용 등 말이다.
2016년도 이제 보름 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돌이켜보니 희로애락의 순간들로 가득하다. 다가오는 2017년에는 모든 이들이 일상에서 더 많은 천사들을 만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자신도 도움이 절실한 누군가에게 천사가 될 수 있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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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아마존 선임 프로덕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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