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五代)는 고대 중국사에서 가장 몰염치했던 시대로 꼽힌다. 907년 주온이 후량의 황제에 오른 때부터 조광윤이 송을 건국한 960년까지의 54년 기간을 오대라고 부른다.
난세에다가, 사회풍조는 극도로 혼탁했다. 이런 시대에 5개 왕조에서 10명의 황제를 모셨다. 후당과 후진에서는 재상을 지냈다. 거란족 왕조인 요가 후진을 멸망시키자 그 요에 귀순해 태부로 기용됐다. 그리고 후한, 후주 때도 태사를 역임했다.
그의 이름은 풍도(馮道)다. 그의 이력은 한 편의 ‘관료학’이었다. 관료사회에서 늘 승승장구했다. 정권이, 왕조가 바뀌는 와중에도. 실로 그의 인생여정은 한편의 살아 있는 ‘관료학 교재’였던 셈. 그 비결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중국의 봉건시대에 관리로 행세한다는 것은 예술(?)의 경지에 오르지 않으면 불가능했다. 뭐 그렇다고 고매한 예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주 얄팍하기 짝이 없는 예술이라고 할까.
관료사회에서 항상 잘 나간다. 그 비결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시비를 가리려 들지 말고 양심을 버린다. 첫째 비결이다. 둘째는 형편을 잘 살펴 항상 유리한 쪽에 빌붙는다.
풍도는 평생 이 비결에 충실했다. 그러면서 이 왕조, 저 왕조에서 재상 급의 높은 벼슬을 지냈다. 그리고 73세까지 살다가 편안히 죽었다.
후진을 멸한 요 태종 야율덕광은 처음에는 자기민족을 버리고 항복해온 풍도를 조롱과 함께 홀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야율덕광은 ‘어떻게 천하백성을 구할 수 있겠는가’고 물었다. 그러자 풍도는 ‘부처님이 와도 안 되고 오직 폐하만이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사탕발림 한 마디 말에 야율광덕은 풍도를 좋아하게 되고 태부자리를 맡겼다. 그리고 이후 항상 풍도를 감싸고돌았다고 한다. 그에 대한 후세의 비판은 가혹하다. 구양수는 ‘염치없는 자’라고 불렀고 사마광은 ‘간신 중의 으뜸’이라고 혹평했다.
모든 기록은 깨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난세에 5개정권에서 10명의 황제를 보좌 했다. 숱한 왕조가 명멸한 5000년 중국역사에서도 풍도가 세운 이 기록은 이 방면에서 단연 톱에 속한다.
그 기록이 그런데 도전 받고 있다. 한국 현대사 굽이굽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어떤 대통령은 피살되고, 어떤 대통령은 자살하고, 어떤 대통령은 탄핵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늘 양지에만 머물렀다. ‘윗분의 뜻을 받들어’가 삶의 좌우명인 기춘 대원군. 김기춘에 의해서다.
유신헌법의 알맹이를 만들었다. 한 때 잠시 찬밥 신세였지만 5공 청산 때 검찰총장으로 부활한다. ‘우리가 남이가’의 ‘초원복집’사건에도 불구하고 3연속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그 시절 노무현 탄핵안 접수로 또 다시 명성을 떨친다.
그리고 70도 훨씬 넘은 나이에 박근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화려하게 권력에 복귀한다. 이상의 경력으로 볼 때 그의 인생여정은 ‘현대판 관료학의 교과서’로 손색이 없다. 문제는 말년 운. 풍도는 영화만 누리다가 편안히 죽었다. 기춘 대원군도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까.
본인의 잇단 부인에도 불구하고 최순실과의 관계가 자꾸 까발려진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몸통 김기춘을 수사하라’는 요구가 날로 거세지고 있다. 그러니….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