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첫 강의실 토론을 맡은 학생 셋이 모두 결석을 했다. 이들이 어디 갔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대통령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이를 반대하는 데모대에 합류하려 뉴욕에 갔다는 것 이었다. 선거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고 싶지 않았지만 별 수 없이 한 시간 동안 선거에 대한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원칙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거야 물론 “시민들의 단순 다수가 투표로 모든 문제를 결정한다”는 것이라는 대답이었다. 그 다음 미국 정부의 정체 (정치체제)는 무엇인가를 물었다. “민주 공화국”이라는 대답이었다.
옳은 대답이다. 민주 공화국이 운용되는 원칙은? “자신의 이익과 공익을 위해 일할 대표자를 단순 다수의 원칙으로 선출해서 그들에게 국가의 통치를 위임”하는 것 이라는 대답 이었다. 제대로 공부를 한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민주국가의 시민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소양과 의무는 무엇이지?
초등학생들을 앞에 놓고 강의를 하는 듯하여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오늘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바로 보고 이해하려면 가장 기초적인 곳에서 출발해서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질문을 계속했다. 그거야 “서로 다른 의견을 경청하고 그 의견을 자신이 반대하더라도 이를 존중하는 것”이요, “토론과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결정된 것은 자신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민주 시민의 기초적인 소양과 의무”라는 것 이었다.
나는 질문을 계속 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옳다던가, 어떤 대통령 후보가 미국과 우리 모두를 위해 더 좋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을 전혀 나타내지 않고, 질문을 계속해서 학생들이 스스로 오늘 미국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이성적인 대답을 발견하도록 노력했다.
그러면 대통령 선거의 적법하고 정상적인 절차는 무엇이지? “미국 헌법에 따라 시민들은 대통령 후보에 직접 투표하지 않고,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할 선거인단을 뽑는 투표를 하는 것 이고, 선거인단은 약 한 달 후 자신들을 선출한 시민들의 뜻에 따라 대통령을 투표로 선출 할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아직 공식적으로 선출된 것이 아니다. 다만 선출된 정당별 선거인단 수를 보고 누가 공식적으로 대통령이 될 것인지 예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지금 선거 결과에 반대해서 밤낮으로 데모를 하는 문제를 이성적으로 검토해 보기를 학생들에게 권고했다. 우선 선거가 법의 조문과 정신에 따라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환기 시켰다.
학생들의 반응은 “선거 기간 중 후보들의 상호 비방이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선거 자체는 법에 따라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이 단순 다수에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 그 자체 보다는 그 결정 과정이 적법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학생들은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면 이번 선거가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순조롭게 진행되었는가?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민주적 의사 결정의 정치적 정당성(legitimacy)이 합법적이고 정상적인 절차에 의에 얻어지는 것이라면, 이 번 선거가 정치적 정당성을 확실하게 획득한 것인가? 학생들의 대답은 다시 한 번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나는 앞에서 민주시민의 소양과 의무에 대해 토론한 것을 상기 시켰다.
오늘 강의에 출석하지 않은 학생들이 선거 결과에 반대하고 이에 저항하기 위해 뉴욕을 갔다는데, 데모를 해서 이루고저 하는 목표가 무엇이지? 대답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돌출하던 소음과 의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침묵과 정적만이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다. 확실한 목표도, 가고자 하는 방향도 없는 행동이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대답 없는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조용한 강의실을 걸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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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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