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엄마와 단둘이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9일 동안 2개 나라 6개 도시를 거치는 만만찮은 일정에 페리, 기차, 지하철, 버스 등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돌아다닌 진짜 배낭여행이었다.
전 세계 여러 나라를 가본 딸과 달리 엄마에게는 이번이 생애 두 번째 배낭여행이었다. 첫 번째 배낭여행 또한 둘이 함께 갔었는데 8년 전에 일본 간사이 지방을 며칠 둘러본 게 전부였다. 그래서 엄마가 이번 여행을 함께 하겠다고 했을 때 내심 놀랐고 더 세심하게 일정을 짰다.
배낭여행은 즐거움과 번거로움이 공존한다. 어디를 갈지 무엇을 먹을지 등 여행 내내 신경 쓸 부분들이 많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니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많다. 그러나 내 걱정과 달리 막상 여행이 시작되자 엄마는 이곳저곳 누비며 배낭여행이 선사하는 새로운 경험에 즐거워했다. 경치 좋은 카페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길거리 악사들의 수준급 연주를 서서 감상하는 것 등은 패키지 여행에서는 누리기 힘들다고 했다.
여행의 하루는 간단하지만 든든한 아침밥으로 시작했다. 혼자 다닐 때는 돈과 시간을 아낄 요량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곤 했는데, 어른과 함께 다니다 보니 삼시 세끼를 잘 챙겨먹는 것이 중요했다. 숙소를 나서면 내가 지도 앱(애플리케이션)을 보며 앞장서고 엄마가 몇 발자국 뒤에서 따라왔다. 그래서 길을 찾는 와중에도 종종 뒤를 돌아 엄마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피곤하지는 않은지 눈치껏 살펴보곤 했다.
그렇게 함께 오랜만에 여행하다 보니 새삼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작은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10여년 전만 해도 부모님이 이끄는 여행에 남동생과 나는 밥상에 숟가락 얹듯 따라가기만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엄마를 동반하여 여행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불과 9일이지만 이번 여행 중에는 내가 엄마를 안전하게 잘 모셔야 한다는 책임감도 들었다.
아직 부모님이 건강하시지만 내 나이가 서른이 넘고 나서는 가끔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곤 한다. 한번 정립된 역할은 변하지 않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힘의 역학은 분명 변하는 것 같다. 달이 보름에는 온 세상을 환한 빛으로 비추다가 그믐이 되면 옅은 빛 가루만 날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처럼.
그래서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은 부모 자식을 떠나 모든 관계 유지를 위한 불변의 진리이다. 특히 가족 및 친구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지극히 한정적인 바쁜 현대인들의 경우에는 함께 보내는 찰나의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타인들과의 관계 변화에 둔감하다가는 어느 순간 돌이키기에 너무 늦어버렸음을 깨달을 수 있다.
시간이 흘러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떠올렸을 때 좋은 부모, 좋은 배우자, 좋은 친구 혹은 좋은 대통령으로 기억할지 그 반대로 나쁘게 기억할지 여부는 전적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자신에게 달려있는 거 같다.
인생을 길게 보면 부, 권력, 건강, 젊음 등이 달처럼 차오르다 어느 순간 저물어버리는 그런 것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진실 되게 살아가자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는 요즈음, 이번의 성공적인 배낭여행은 엄마와 내가 두고두고 추억할 좋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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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아마존 선임 프로덕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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