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들의 역대 미국대통령 평가에서 빠짐없이 위대한 대통령에 선정되는 인물은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그리고 1930년대 대공황이라는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등 3명이다. 이 가운데 거의 예외 없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는 사람은 링컨이다.
그러나 비교적 최근의 대통령들은 역사학자들의 평가에서 그리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한다. 국민들에게 그처럼 인기 있었던 로널드 레이건도 보통 등급이다. 다른 대통령들 역시 대개 보통이나 보통 이하 등급이다. 닉슨 같은 경우는 적지 않은 외교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워터게이트’라는 주홍글씨 때문에 최악 평가를 면치 못한다.
20세기 후반 대통령들로서는 이런 평가가 억울할 수 있다. 대통령의 위대함은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돼야 하는데 자신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래 무엇이든 멀리서 바라볼 때가 가까이서 볼 때 보다는 나아보이는 법이다. 인물에 대한 평가 역시 그렇다.
그리고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는 리더십은 대부분 국가적 위기 속에서 싹트고 발현된다. 위대한 대통령들이 국가를 이끌었던 시기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이 더 밝아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무리 위대한 자질을 갖고 있어도 시대적 상황과 맞아 떨어지지 않으면 흙속에 묻힌 보석과 다르지 않다.
위대한 대통령의 등장을 가능케 하는 이런 필요조건이 주어지지 않은 대통령들로서는 자신들에게 내려진 역사학자들의 박한 평가가 서운할 법도 하다. 조지 W 부시가 거짓명분을 만들면서까지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지도자 코스프레’를 한 것은 위대함에 대한 치기어린 갈구의 분출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더 이상 위대한 대통령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이유의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워싱턴과 링컨, 루스벨트 같은 대통령의 시대와 지금은 사회가 너무나도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도 매스미디어와 인터넷, 그리고 SNS가 일상을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그러면서 정치지도자들을 접하고 인식하는 방식에서부터 혁명적인 변화가 생겼다.
유명인사들의 사생활에 관한 정보는 소소한 것들까지 그대로 노출되고 삽시간에 퍼진다. 정치인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과거에는 미디어가 정치지도자들의 개인생활을 지켜주고 인간적 약점까지 덮어주는 경우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것이 불가능하다. 카리스마의 바탕이 되는 신비함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국민들이 관심을 쏟는 이슈도 거대담론들보다는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로 점차 바뀌고 있다. 이런 이슈들을 다루는 데는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보다 시스템을 잘 이끌고 가는 합리적인 리더십이 더 잘 어울리고 효과적이다. “나를 따르라”는 식의 구시대 리더십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그리고 매스미디어 난립과 신자유주의 여파로 국민들이 이념적, 경제적으로 ‘파편화’되면서 통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정치적 토양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위대한 대통령의 시대는 이제 저물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실망할 것은 없다. 시대변화에 걸맞는 리더십만 잘 선택해도 국가는 잘 굴러가고 국민들은 얼마든 편안할 수 있다. 상식적인 리더십을 지닌 대통령이면 충분하다.
상식적인 리더십이란 말 그대로 ‘소통’과 ‘경청’ ‘공감’이라는, 좋은 사회의 토양이 되는 보편적이면서도 상식적인 자세와 정서를 지닌 리더십을 말한다. 여기에 국가가 잘못했을 경우 그것을 시인하고 사과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겸손’과 ‘용기’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최근 한국의 한 언론사가 창간을 맞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국민들의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친 대통령’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아마도 그가 지키려 했던 상식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과, 이런 상식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권력에 대한 반감이 동시에 표출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상식적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위대한 일인지를 우리는 요즘 너무 많이 목도하며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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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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