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계좌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웰스파고 은행 이사회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존 스텀프 최고경영자(CEO)로부터 4,500만달러 상당의 보상과 보수를 박탈하기로 했다. 내역을 보면 확정되지 않은 주식 지급분 91만주(27일 현재 주당 45달러)와 연간 보너스 400만달러, 그리고 조사가 진행되는 기간에 해당하는 봉급 등이다. 이와 함께 부정행위가 저질러진 기간에 소매금융을 책임졌던 캐리 톨스테드에 대해서도 1,900만달러를 박탈하기로 했다.

웰스파고 이사회의 조치는 스캔들과 관련한 연방의회 청문회를 앞두고 의원들의 심기를 달래고 비난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너무나도 당연한 조치다. 스텀프 CEO와 톨스테드는 최대 200만개에 달하는 은행계좌를 거짓, 혹은 동의 받지 않은 정보로 개설한 스캔들의 책임을 물어 무려 5,300명의 직원들을 해고하면서도 고위임원들의 보수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비판을 받고 있다.

스텀프의 이런 행태는 미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업이 실패해도 CEO 자신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은 채 거액의 보수를 뻔뻔히 챙기려는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이다. 웰스파고 이사회의 이번 조치는 일단 금전적으로 CEO의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년 사이에 미국 CEO들이 챙기는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아 왔다. 1980년만 해도 CEO 연봉은 일반 종업원의 40배 정도였으나 지금은 300배를 훨씬 넘는다. 이런 연봉에 대해 의식 있는 많은 경제학자들은 ‘렌트 착취’에 가까운 행위라고 지적한다. 받는 연봉만큼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고 실패를 해도 계약에 명시된 거액의 보너스와 퇴직금을 챙겨 떠나면 그만이다.

9년 전 홈디포 CEO 로버트 나델리는 실적부진으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무려 2억1,000만달러의 퇴직금을 받았다. 그의 취임 당시 50달러가 넘던 홈디포 주가는 41달러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러자 많은 언론들은 “경영에 실패하고서도 엄청난 ‘실패수당’을 챙겨 나간다”고 비판했다. 미국 기업들의 이런 관행은 결국 2007년 경제위기의 원인들 가운데 하나가 됐다. 책임을 지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 풍토와, 실적에 따라 거액의 보너스가 결정되는 계약은 무책임하고 방만한 경영을 초래했다.

경영자의 책임에 대한 인식은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일본의 경우 기업이 실패하면 경영자는 죄인이 된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 경영자들은 별다른 책임 의식을 보이지 않는다. 경제위기 후 많은 기업들의 경영자와 월스트릿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자신들의 보너스를 챙겼다. 오죽하면 오바마 대통령이 나서 ‘부끄러운 짓’이라고 질타했을까.

웰스파고 스캔들로 직격탄을 맞은 건 저임금의 일선 직원들뿐이다. 이들은 어처구니없이 높게 내려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해고당했다. 이런 정책을 만들고 강요한 경영진은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았다.

웰스파고 이사회 결정은 실패한 CEO에게는 ‘실패수당’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철저한 자체 조사를 통해 책임이 드러날 경우 추가 제재 혹은 박탈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일부 연방의원들은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청문회를 벼르고 있다. 웰스파고 스캔들이 무책임하고 도덕적으로 해이한 많은 CEO들에게 강한 경종의 메시지를 던져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