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한잔의 초대/ 고재승 재외한인사회연구재단 회장
사진= 조진우 기자
현대중공업서 유조선 설계작업 하다 부자나라서 돈 벌고싶어 1980년 미국행
맨하탄서 불고기샌드위치 개발해 대박...토다이.미나도.이치우미 등 성공가도
한인사회 봉사로 제 2인생 살고파
미주한인 이민사를 연구하고 기록하는 재외한인사회연구소, 그 연구소를 돕는 재외한인사회연구재단이 새로운 사령탑을 맞았다. 요식업으로 성공한 고재승 재외한인사회연구재단 신임회장의 계획과 36년 이민사를 들어본다.
●우리가 할 일
“ 2011년 설립된 재외한인사회연구재단은 정해민 전 회장을 비롯 18명의 이사진들이 기초를 다져왔다. 퀸즈칼리지 민병갑 석좌교수가 소장인 재외한인사회연구소를 지원하고자 출범된 단체인데 사람들은 퀸즈칼리지를 후원하는 단체인줄 오해를 하기도 한다.”
고재승 회장은 먼저 재외한인사회연구재단의 성격을 밝히면서 현황을 설명한다.
“그동안 연례학술대회와 정기세미나를 통해 박사과정 학생들의 논문 발표와 민병갑 교수의 연구 발표를 해왔다. 연구논문 100여편, 출간한 책도 10여권이다. 출간비용이 많이 들어도 미주이민사를 기록으로 남기므로 결코 멈출 수가 없는 일이다. "
현재 재단의 기금으로 박사과정 임세정씨를 비롯 3인(각자 1년에 3,000달러)이 한인사회 현안과 실태를 연구 중이며 필요시 파트타임이 일을 돕는다.
“골프대회나 갈라 기금모금 대회는 경비 빼고 나면 푼돈이 남는다. 기금모금대회는 하지 않겠다. 이사회 및 운영에 참여하는 상임이사와 기부금을 내는 후원이사 둘로 나누어 대폭 이사들을 늘리겠다. 첫 해 목표액을 10만달러로 정하고 3개월마다 현황 및 후원업체 광고를 하면 자연스레 재단이 홍보되면서 동참하는 한인이 늘 것으로 보인다.”
고재승은 11월 5일 열리는 이사회에서 재외한인사회연구재단을 ‘한인사회연구재단’으로 개칭할 것을 의논할 예정이다. 이는 앞으로 재외한인사회연구소 지원을 중점 사업으로 이어가는 동시에 활동 영역을 미동부 타대학의 한인사회 연구를 하는 교수 지원 등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발전 시키려는 것이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부터 결혼식 사회를 수없이 보았을 정도로 성격이 원만하고 교우관계가 넓다. 현재도 신한은행 소사이어티 골프회장으로써 비즈니스로 성공한 이들과 유대관계가 깊다. 또 그는 한국국회와 MOU를 교환, 정부기금을 직접 받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고재승은 2012년 재외한인사회연구재단 신임이사, 2015년 수석부회장, 7월부터 제2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학업과 생업을 병행
1948년 서울 마장동에서 4남2녀 중 네째로 출생한 고재승은 돈암초등학교, 서울중학교, 경기공업고등학교, 서울산업대학교 출신이다.
아버지는 공기총을 개발하고 총포상을 경영하며 평생을 사냥으로 살았고 나름 집안은 유복했다. 그러나 19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총기를 다룬다 하여 전 재산을 압류당하고 삼양동 천막집을 전전하며 살아야 했다.
당시 초등학교 1~2학년이던 고재승 소년은 한순간에 집안이 몰락하자 생활전선에 나섰다. 64년 15세 소년은 쌀장사가 되었다. 누구나 빈곤하여 쌀 한 됫박과 새끼줄에 낀 연탄 한 장으로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소년은 이모가 하는 구멍가게 바로 옆에 쌀 멍석자리를 펴놓고 쌀을 팔았다. “공부는 해야지.” 싶어 고등학교는 야간인 경기공고로 갔다.
“나는 장사하는 사람이라 학교에 늦을 수도 있고 교복을 입지 않고 등교할 수도 있다”며 호기롭게 학교측에 말하고는 학업과 장사를 병행했다. 학교 선생들의 쌀도 대주었고 월급날이면 선생들에게 쌀값 외상값을 받았다.
군대를 다녀온 고재승 청년은 1972년 현대중공업 기본설계과 중견사원으로 입사했다. 그리스의 선 엔터프라이즈 사 리바노스로부터 주문받은 26만톤급 유조선 설계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밤낮으로 일하는 기술자들과 직원들 건강 유지를 위해 건강체조를 개발했고 이는 지금도 현대에 전해지고 있다.
철판 조각을 설계에 따라 잘라서 용접이 끝나면 영국 로이드사에서 엑스레이를 찍어 용접이 제대로 되었는 지 촬영을 했다.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드디어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1974년 6월 선박 진수식을 가졌다. 그 역사적 현장에 고재승이 있었다.
그러다가 현대조선소 2만여명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투쟁이 일어났고 민간인 경비대 체조선생이었던 고재승은 회사측과 노동자들간의 협상 자리에 참여했다. 이로인해 1975년 정회장의 부름으로 서울로 와 현대사옥에서 홍보일을 하다가 현대종합상사가 출범, 그곳에서 일하게 된다.
“조직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비위도 맞추고 해야하는데 이런 쪽으로 영 아니었다. 마침 조선소 기본설계과에서 같이 일한 친구를 만났다. 성우산업 아들인 그는 도산위기에 처한 무역회사를 맡아달라고 했다.
담양죽제품, 앨범, 자개함, 이쑤시개 등 수제소품이지만 미국 Pier1.임포트와 거래하는 큰 회사였다. 결혼과 동시에 노량진에 셋방을 얻어 신혼집이자 사무실로 사용했고 성무산업이라 이름지었다.”비즈니스는 잘되었다. 매일 우체국 사서함에 들르면 LC(신용장)가 가득 차 있었다.
●불고기 샌드위치 개발
“76년 미국, 일본으로 출장을 다니며 상품을 홍보하고 주문을 받았다. 뉴욕 센트럴 팍 근처 컨벤션 센터를 부지런히 오가면서 보니 미국은 잘 사는데 한국은 너무 가난했다. 이 천국같은 나라에서 돈을 벌어보자 싶어 친구에게 회사를 돌려주고 1980년 가방 2개를 들고 뉴욕으로 왔다.”
브로드웨이에 사무실을 차린 그는 무역을 시작했으나 컨테이너 한 대 분량의 물건을 팔아도 날자가 제대로 안 지켜지거나 사고가 나면 돈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1983년 6애비뉴 18,19가 사이에 자신의 이름을 딴 J.Ko 커피샵을 차리면서 본격적으로 요식업에 전념했다. 뉴저지집에서 새벽4시에 일어나 6시에 가게문 열고 저녁6시까지 아내와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고 커피를 팔았다.
“근처가 미개발 지역으로 자동차, 봉제학원이 많았다. 공원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궁리한 뒤 불고기 샌드위치를 개발했다. 히로빵안에 불고기 양념을 한 고기에 치즈를 넣은 샌드위치를 내놓으니 셔터문을 올리기도 전에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
불고기 샌드위치가 히트 치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캐셔대 열고 닫히는 시간이 아까워 아예 캐셔대를 치워버렸다. 샌드위치를 내주고 돈을 받으면 무조건 카운터 아래로 떨어뜨리고 저녁에 바닥에 쌓인 돈을 쓸어 보따리에 담아서 집에 가서 정리했다.”
점심먹을 시간도 없이 장사를 하며 커피만 내리 마시다가 위장을 버리고 각목을 든 강도를 당한 적도 있지만 4년간 많은 돈을 벌었다. 1987년 뉴저지 앨런데일에 건물을 사서 Park Crest Cleaner를 열었고 5년간 운영한 후 1992년 42가 버스 터미널 안에 Green Tree Food Inc를 열었다. 이후 2015년 은퇴할 때까지 20년이상 경영했다.
고재승은 한인사회에서 토다이, 미나도, 이치우미 뷔페 경영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2년 미나도 시푸드 롱아일랜드 점을 오픈하여 2년간 운영한 후에는 미동부쪽 토다이, 다시 2003년부터 2015년까지 시푸드 뷔페 레스토랑 이치우미(Ichiumi)를 맨하탄 6이스트 32가와 뉴저지 에디슨 몬로팍 안에서 운영했다.
“요식업이 나와 궁합이 맞는 것 같다. 1년에 15만명~20만명씩 와서 식사를 하는데 우리는 가장 보편적인 음식을 제공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요식업자들은 맛, 박리다매, 분위기 등등 방향을 정한다음 아이템을 설계하고 사전조사를 해야 한다. 고객이 사먹을 수 있는 한도내에서 메뉴와 가격을 맞추는 것이 요식업 성공 비결이다.”
고재승, 조앤 고 슬하의 고명딸은 코넬대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한 미술가이자 교사이다. “한인이민에 대한 기록은 숫자 하나라도 정확하게 남기도록 하겠다. 사회봉사 DNA(유전자)가 내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기까지 달려왔다. 지금껏 남에게 단 10달러도 요구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 이 일을 위해 기꺼이 손을 내밀 것이다. 이민와서 생업에 최선을 다했던 것처럼 지금 맡은 일도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한다.
‘배고픈 사람을 먹인다는데 늘 흐뭇했다“는 고재승은 ’정신적으로 배고픈 이들을 살찌게 하고싶다‘는 마음인 것같다. 재외한인사회연구재단(jseungko@gmail.com, 646-250-6640)의 제2의 도약기가 눈앞에 보인다.
<
민병임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