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 제재엔 강경, 뒤에선 “도와달라” 구걸외교
리옹호(왼쪽) 북한 외무상이 21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파리기후변화협정 비준 독려 특별행사에 참석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유엔>
6박7일 일정동안 기조연설 외 공식행사 없어
인도주의 지원 기구 만나 홍수피해 도움 호소
OCHA 국장 난색표명, 국제사회 냉철한 반응 체험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1차 유엔총회에 참석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유엔과 국제사회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기구 관계자들을 잇달아 비공개로 만나 함경북도지역 홍수피해에 대한 도움을 호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엔에 와서 대외적으로는 인권범죄와 핵•미사일 개발 문제에 대한 유엔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들을 “단호히 배격 한다”는 기존입장을 재차 확인하고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국제사회의 단합된 제재 움직임에 정면 도전하면서 뒤로는 몰래 “우리가 지금 어려우니까 도와 달라”는 ‘구걸외교’를 하고 돌아간 이면성이 비난을 사고 있다.
■ 유엔총회 기조연설
리 외무상은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정상회의에 참석한 뒤 지난 20일 새벽 특별 전용기편으로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J.F.K International Airport)을 통해 미국에 입국했다.그리고 26일 오전 6박7일 뉴욕 일정을 마치고 출국했다. 그는 23일 유엔본부 총회의장에서 열린 ‘일반토의’ 오전회의에 참석해 연단에 올라 기조연설을 했다.
연설에서 “핵무장은 국가노선”이라며 “핵의 질적•양적 강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모든 유엔회원국 앞에서 노골적인 도전 선언을 했다. 또 안보리를 겨냥해서는 “정의와 국제법을 떠나 미국의 강권을 유엔의 보자기로 감싸는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외에도 지난 1월 자신들이 감행한 제4차 핵실험에 맞서 안보리 이사국들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결의 2270호에 대해서도 “핵과 탄도로켓 활동이 위협이 된다는 법률적 근거는 유엔헌장에도, 국제법에도 명시된 게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는 유엔의 권위와 정당성을 국제사회에 공식 부인한 발언이다.
■ 뉴욕에서의 행보
리 외무상은 뉴욕 체류 기간 중 기조연설이외에 두드러진 대외 활동이 없었다. 유엔본부 내에서는 파리기후변화협정 비준 독려 행사 참석을 위해 회의장에 입장할 당시 국가대표들을 맞이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잠시 인사 악수를 나누는 장면이 유엔TV에 포착된 것과 피터 톰슨 유엔총회 의장을 예방한 것이 고작이다.
매해 유엔총회에 참석하는 국가대표가 관례적으로 갖는 반 총장과의 면담마저도 없었다. 반 총장은 2014년과 2015년 유엔총회 참석 대표단을 이끌고 뉴욕에 도착한 리수용 전 북한외무상을 그때마다 유엔본부 38층에 위치한 자신의 집무실에서 별도로 만났다.
유엔본부 밖에서는 미주한인 종북단체 재미동포전국연합회(회장 윤길상)의 문화예술분과위원장인 이준무씨가 지휘하는 ‘우륵 교향악단’이 맨하탄 ‘머킨 콘서트 홀’에서 가진 음악연주회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에 도착한 뒤 현장에서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던 재향군인회 미북동부지회(회장 노명섭)와 미주탈북자선교회(회장 마영애) 회원들을 지나서 입장하는 모습이 포착돼 동영상이 유튜브(youtube)에 올랐을 뿐이다.
하지만 장관 취임 후 이번 첫 미국을 방문한 리 외무상은 불과 10여개 우호국가 대표들과 개별 접촉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모두 비공개로 대외적으로는 매우 조용히 있다가 평양으로 돌아갔다.
■ 유엔과 대북 지원 기구들
그는 그러면서 역시 뒤로는 바쁘게 유엔 대북 인도주의적 지원 기구들을 찾아다녔다.
유엔개발계획(UNDP) 대변인실은 지난 23일 헬렌 클라크 UNDP 총재와 리 외무상과의 양자접촉을 공식 확인했다. 그러면서 “UNDP 총재는 여러 대표단 단장들의 요청에 따라 그들 국가에서의 UNDP 활동을 논의하기 위해 (개별적으로) 그들을 만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총 4,329만 달러 예산 규모의 2011∼2015년 주기 북한 ‘국가프로그램’이 지난 해 1년 연장돼 올해 12월31일로 종료되는 UNDP는 이달 초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운영이사회에 현 프로그램의 재 연장은 물론 새 주기 ‘국가프로그램’ 계획안을 제출하지 않았다.<본보 2016년 9월14일자 A8면 기사>
운영이사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UNDP와 북한이 새로운 5년 주기 프로그램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주요 이사국들은 규모와 기간이 단축된 새 주기 프로그램, 또는 현 프로그램의 1∼2년 연장을 선호하고 있어 서로가 입장을 조율하고 있기에 지난 이사회에 계획안이 제출되지 못했다.
다음 운영이사회는 2017년 전반기 정규회의로 내년 1월31일∼2월3일 열릴 예정이다.
UNDP는 평양에 사무소를 두고 있으며 타판 미슈라 상주대표는 현지에서 함께 활동하는 나머지 5개 유엔 기구들(UNFPA, UNICEF, WFP, FAO, WHO)을 대표하는 주북한 유엔상주조정자 직책을 겸하고 있다.
클라크 총재와 리 외무상은 북한 국가프로그램에 대한 향후 계획과 미슈라 상주조정자가 주도하고 있는 북한 홍수피해 지원 사업 문제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 철재지붕 지원 요청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대변인실도 24일 스티븐 오브라이언 국장(유엔 사무차장•USG)과 리 외무상의 양자접촉을 확인했다. 유엔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리 외무상은 이날 오브라이언 국장에게 홍수피해에 대한 긴급지원을 요청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리 외무상이 현재 수해피해 현장에 제공되고 있는 천막텐트 이외에 “철재지붕 지원을 요청했는데 이에 오브라이언 국장은 난색을 보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OCHA의 중앙긴급대응기금(CERF)은 이미 북한 주재 유엔 구호 기구들로부터 함경북도 지역 수해 복구지원 자금 요청을 받고 관련 신청서를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CERF는 올해 1월29일 이미 북한에 의료와 보건, 식량 지원을 위해 800만 달러를 제공했으며 지난 해 8월에는 가뭄에 따른 피해 복구를 위해 63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외에도 2014년에 650만 달러, 2013년 210만 달러, 2012년 700만 달러, 2011년 500만 달러 등 매해 긴급지원 명목으로 북한에 돈을 투입해오고 있다.
리 외무상은 같은 날 역시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을 방문하고 있는 국제적십자사(IRC) 피터 마우러 총재를 만나 홍수피해 지원을 부탁했으며 앞서 22일에는 북한 대표단원으로 리 외무상과 함께 뉴욕에 도착한 김창민 외무성 국제기구 국장이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UNICEF) 관계자들을 만나 지난 15일 유니세프가 운영이사회로부터 총 7,137만2,000 달러 예산 규모의 2017∼2011년 새 5년 주기 북한 ‘국가프로그램’을 승인받은데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고 홍수피해 상황과 복구를 위한 기급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이와 관련 유엔 소식통은 리 외무상이 이번 뉴욕 방문 기간 유엔의 인도주의적 지원 기구들과 가진 양자접촉에서 “인도주의적 지원 문제의 정치화에 불만을 표하고 북한이 유엔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기본권리를 주장하는 등 ‘핵은 핵이고 수해는 수해다’라는 식의 논리를 폈지만 수해피해 복구와 평상시 주민들의 생계 지원을 위해 사용했어야 할 막대한 액수의 돈을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핵과 미사일을 개발에 투입했다는 국제사회의 냉철한 결론에 막혀 대북제재 강화와 나란히 국제사회로부터 선뜻 지원을 얻기가 예전과는 크게 달리 어려워졌다는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돌아간 셈이다”고 분석했다.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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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본부=신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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