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 연휴였던 지난 3일 저녁, 남가주의 어바인 메도우스 앰피시어터 주변 잔디밭은 화기애애했다. 퍼시픽 심포니의 공연을 보러 온 많은 관객들이 공연시간 전 가족 친지들과 피크닉을 하고 있었다. 기분 좋게 들뜬 분위기는 그러나 한 순간에 충격으로 얼어붙었다. 80세의 한인남성이 운전하던 승용차가 주차장 울타리를 뚫고 잔디밭을 향해 돌진한 것이었다. 마침 공연장 입구에 세워져있던 경찰차를 들이 받고 자동차가 멈춰 서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 과정에 9명이 부상했다. 승용차가 계속 질주했을 경우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경찰은 사고원인을 일단 고령에 의한 정신적 ‘혼란’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고령 운전자가 늘고 있다. 연방 질병통제국에 의하면 2012년 기준 65세 이상 노년층 운전면허 소지자는 총 3,600만명, 이들 중 연간 자동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5,560여명, 부상자는 21만4,000명에 달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사고로 인한 피해자가 연간 1,400만명(18~64세)에 달한다. 개인차는 있지만 75세 이상이 되면 사고위험은 급격히 높아진다. 시력?청력 감퇴, 인지능력 저하, 운동신경 둔화 등 노화가 원인이다.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 조만간 운전대를 놓아야하는 것이 노년의 현실이다.
운전은 자유와 독립을 의미한다. 남의 도움 없이 원하는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운전은 필수다. 그런 의미에서 운전은 자존심에 직결된다. 거기에 더해 많은 한인가정에서는 조부모가 아이들의 통학을 책임진다. 부부가 출근하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데려오는 일은 조부모 몫인 경우가 많다. 맞벌이 부부에게는 보통 큰 도움이 아니다. 하지만 이 역시 대가가 따를 수 있다. 아이를 등교시키던 한인 할머니가 학교 앞에서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아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진 적도 있다.
노년에 언제까지 운전을 계속할지는 각자 정할 일이다. 하지만 결정의 기준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다. 개인적 자존심이나 가족의 사정은 그 다음이다. 어바인 야외극장에서 일어난 고령 운전자의 ‘혼란’이 개학 맞은 학교 앞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운전대를 놓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은 노년에 꼭 필요한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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