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은 여러 가지에서 놀랐다. 첫 번째는 미국의 풍요로움이다. 운동장만한 크기의 수퍼마켓 안에 한국에서는 구경도 못하던 온갖 물건들이 빽빽이 들어찬 모습은 가히 경이로웠다.
두 번째는 미국의 자유로움이다. 한국에서는 전두환의 무자비한 철권통치로 무고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잡혀 가던 시절 미국에서는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무슨 말을 하든 100% 자유였다.
세 번째는 미국 백인들의 친절함이었다. 당시만 해도 백인들은 동양의 작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에게 대체로 친절했다. 차를 몰고 가다 이상이 생겨 거리에 세웠거나, 심지어는 차를 타고 가는 중에도 타이어에 이상이 있으면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질러 체크해 보라고 알려주곤 했다.
네 번째는 이들의 질서 의식이다. 수많은 차들이 교통 법규를 스스로 지키며 질서정연 하게 굴러 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그 후 30여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많이 달라졌다. 미국인의 질서 의식과 친절함은 예전 같지 않다. 조금만 늦게 가면 마구 경적을 울리고, 조금만 빈틈이 있으면 끼어들고, 빨간 불이나 스톱 사인도 무시하기 일쑤다.
이제는 소수계가 다수가 된 가주는 좀 덜 하지만 백인이 주류인 미 중서부나 남부를 여행한 사람들에 따르면 소수계와 이민자를 보는 백인들의 눈길이 예사롭지 않다고 한다. 빈 깡통 도널드 트럼프의 부상이 이런 백인들의 소수계와 이민자에 대한 적대감과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도대체 어쩌다 미국이 이 지경이 된 것일까.
80년대 후반 미국 가정의 평균 소득은 5만3,000달러였다. 그런데 2012년 인플레를 감안한 미국 가정의 평균 소득이 5만2,000달러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올라도 시원치 않은데 오히려 1,000달러가 줄어든 셈이다.
물론 미국인들의 소득이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던 것은 아니다. 2000년에는 5만7,000달러까지 올랐었다. 그러던 것이 하이텍 버블이 터지면서 2002년 5만4,000달러로 줄었다 2007년 다시 5만7,000달러 선을 회복했으나 다시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2011년에는 5만2,000달러로 주저앉았다. 2014년이 되어서야 5만3,000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이 수치는 14년 전보다 4,000달러나 낮은 것이다.
이토록 오랫동안 임금이 오르지 않자 미국 백인들은 그 화살을 값싼 물건을 만들어 파는 중국과 멕시코 밀입국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 중국과 멕시코 밀입국자를 가장 격한 언어로 비난한 트럼프가 중하류 백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은 이런 분위기의 산물이다.
미국 중하류 층 임금이 오르지 않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기술 혁신 때문이다. 컴퓨터 등 하이텍의 발달로 웬만한 일은 컴퓨터와 로봇이 대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이들이 주로 종사하고 있는 단순 노동직은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30년 간 사라진 일자리의 80%가 이로 인한 것이고 중국 등 저임금 때문에 없어진 것은 20%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 혁신을 적으로 선거 운동을 벌이는 것은 중국이나 멕시코 밀입국자를 상대로 싸우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이들이 계속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 속담에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미국의 형편은 곳간이 빌 때 인심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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