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사는 이야기/ 뉴욕지구호남향우회 제18•19대 김영윤 회장
먼저 온 가족들 따라 공무원생활 접고 이민
2011년 청과협회 회장 맡아 침체된 협회에 활력
장학금·이민정착 등 고향 선후배들의 버팀목 역할
그의 고향사랑은 남다르다. 불우환경의 고국 고향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한다. 뉴욕일원 고향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갓 이민 온 고향후배나 선배들이 정착을 도와주며 버팀목도 돼준다. 고향 웃어른 경로행사도 늘 마음속에 담고 있다. 그렇다고 고향사랑에 그치지 않는다. 한인사회와 고국 발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그는 제18대 회장에 이어 19대 회장에 연임돼 활동 중인 뉴욕지구호남향우회 김영윤(64) 회장이다.
■ 가족 품을 찾아
그는 1952년 전라북도 부안에서 3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출생지는 부안이지만 1세 때부터 외가가 있던 고창에서 자랐다. 그 후 중, 고교와 대학은 광주에서 다녔다.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을 좋아하며 공부만 하던 모범생이었다. 그래서 장래 희망도 선생님. 중, 고교 때는 공부보다 친구를 더 좋아했다. 심한 사춘기를 겪던 시절이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아픔을 딛고 친구들을 생각하던 당시엔 검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희망은 꿈으로 그쳤다. 조선대학 토목과에 진학하게 된 것. 2학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경기도 일산 9사단에서 복무했다. 복학해서 졸업한 후에는 국가고시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다 1976년 7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했다. 1988년 이민 오기 전까지 전북 정읍군청(현재 정읍시청)에서 공무원생활을 했다.
그는 1988년 미국으로 이민 왔다. 미리 이민 떠난 부모와 형제 등 가족 품이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먼저 온 덕분에 정착은 쉬웠다. 뉴저지에 도착한 다음 날부터 일을 나갔다. 하지만 이미 자리를 잡고 청과업소를 운영하고 있던 부모와 형제들의 도움으로 남보다 쉽게 사업기반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가족중심 비즈니스를 하다가 90년도 중반에 개인비즈니스로 독립해서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꾸준하게 청과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장남이지만 미국 이민 길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부모님과 형제들이 먼저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언제까지 떨어져 살 수도 없었고 가족들이 그리워 공무원 생활을 접고 결국 이민을 결정 뉴저지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 지금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 청과협회와의 인연
청과업소를 운영하며 뉴저지에 정착한 그는 많은 한인들과 인맥을 쌓았다. 그러다가 지난 2008년 뉴욕한인청과협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한인사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년 임기의 이사장을 3년간 역임했다. 그런 경험을 쌓은 뒤 회원신뢰를 토대로 청과협회 회장에 무투표 당선됐다.
그는 지난 2011년 회장에 취임한 것은 ‘침체된 청과협회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기 때문“이라고 회상한다. 협회가 한인사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어 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가 조직의 방대함에 비해 결집력이 다소 약하다고 진단한 것이다. 또한 회원들의 권익신장과 이익을 대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인청과상들의 비협조로 적극적인 여론주도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측면에서는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로부터 협회 일에 올인 했다. 회원 권익신장과 적자인 추석맞이대잔치 행사에 대해 고민하고 성공적으로 이끌려는 결의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개인 비즈니스는 남이 일이 돼 버릴 정도였다.
그는 “추석맞이대잔치는 협회를 알리는 행사라기보다 한인 2, 3세들에게 정체성을 일깨우고 한민족을 얼을 심어주며, 한국을 알리는 홍보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 때문에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장기적이고 지속성 있는 지원이 없는 한 적자가 날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까웠던 심정을 귀띔한다.
■ ‘애향, 애국 향우회’
그의 호남향우회 인연은 지난 2008년 이사를 맡으면서다. 청과협회 이사장과 회장을 하면서 향우회 활동도 꾸준히 참여했다. 그런 인연을 계기로 지난 2014년 제18대 회장을 맡았다. 지난 1980년대 전성기와는 다르게 침체되고 이름뿐인 단체에서 벗어나 활성화를 시켜서 존재의 이유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장 취임 시 호남향우회의 발전과 향우들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또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호남 향우회 일원임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 서로간의 유대를 강화 시키는 것, 회원 수를 최대한 늘리도록 하는 것 등의 약속도 했다.
그 후 18대 2년의 임기동안 고향과 뉴욕일원의 저소득층 자녀 대상 장학 사업을 진행했다. 지난해 고향 자녀 10명에게 각각 2,000달러씩 2만 달러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뉴욕일원 향우 자녀 5명에게 1,000달러씩의 장학금을 각각 제공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5년 5월 미주호남향우회총연회장에 취임하면서도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고국 고향의 학생들을 위해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뉴욕호남향우회 제19대 회장에 연임돼서도 고국 고향 자녀들과 뉴욕일원 향우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되어 자부심을 느낀다며 지속적으로 장학 사업을 전개할 것을 다짐했다.
“회원등록제 실천을 위해 19대 회장에 연임하게 됐다”는 그는 “1인 100달러의 회원등록제를 하려는 이유는 회원들이 호남인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뿐만 차기 회장이 향우회를 원활하게 이끌 수 있는 안정적인 재정마련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 안정적인 기반을 통해 향우회원들을 위한 야유회와 웃어른들의 단풍관광 등을 진행하기 위함이다. 또 고국 고향 청소년들의 뉴욕방문이나 뉴욕일원 고향 자녀들의 모국방문 체험 행사 등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갓 이민 온 고향 선,후배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사업상 많은 조언과 노하우 등의 도움을 제공하는데도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호남향우들이 크고 작은 행사에 참여가 미흡한 것이 시급한 현안이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싶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힘쓰고 있다. 고국과 고향 그리고 한인사회 발전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진정성을 잃지 않고 열성을 다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 호남향우회장으로서 뿌듯한 자부심과 함께 무거운 의무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이유다.
뉴욕일원 곳곳의 호남인들이 똘똘 뭉쳐 서로 돕고 사는 한인사회를 만들어가는 모범적인 향우회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호남인들만의 향우회가 아닌 고국과 고향발전에도 기여하는 멋진 향우회가 될 수 있도록 호남인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거듭 당부하고 있다.
그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조국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할 것이 미주지역 호남향우회의 시작이었다.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친목도모 모임이 향우회이지만 호남향우회는 고향사랑은 물론 미주지역에서 조국의 민주화운동 지원과 동참 목적으로 결성된 만큼 ‘애향•애국 향우회’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 낮은 자세와 겸손한 마음
그는 회장덕목으로 자기를 낮출 수 있도록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함을 꼽는다. 여러 사람의 말을 경청할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하는 건 당연하다. 청렴결백하고 강력한 리더십도 필수조건이다. 그래서 일까? 그는 절대로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누가 뭐라고 해도 끝까지 경청하고 비난하지도 않는다. 순수하고 권위적이지 않으며 겸손하고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은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그는 비즈니스도 절대 장사속이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한다. 그래서 신용과 고객과 종업원에 대한 신뢰를 중요시 여긴다. 비즈니스 철학은 지역사회 봉사를 위한 환원에 두고 있다. 매년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등 연말과 새해가 시작되는 연시에는 소방서를 방문하여 과일과 음식 등을 대접하며 감사를 표한다. 공부를 잘하는 지역 학생들의 부모에게는 디스카운트 플랜도 제공한다. 시에 불우이웃돕기 기금도 기탁하는 것 등이 다 그런 이유다.
‘의리를 지키자’를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실천하며 살고 있다는 그는 앞으로 남은 인생은 그 동안 소홀했던 가족들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면서 꾸준하게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말한다.
“한인들이 서로 대할 때 남들도 자기마음처럼만 생각하면 서로 싸우지 않고 ‘이해, 배려, 화목’할 수 있다”는 그는 “풍족하지 못해도 남을 도와줄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고 있으면 한인사회가 좀 더 멋질 수 있은 것”이라며 한인사회를 걱정하고 있다.
“호남향우회 회장은 회원들만 보면 자꾸자꾸 낮아지기 때문에 바람 빠지는 풍선과 같다”는 그는 늘 낮은 자세와 겸손한 마음으로 생활하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회장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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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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