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하탄서 회고전이후 칩거중인 원로조각가 한용진
▶ 돌멩이의 단단함처럼 후세들에 뿌리•자긍심 강조
6월 22일, 맨해튼 ‘메종 제라르’ 가구 갤러리의 오프닝 리셉션에서 한용진 조각가
전시장 가구들 위에 자연스럽게 전시되었던 한용진 씨의 작품들.
“박인비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자 자신이 아시안 최초로 LPGA 홀 어브 페임에 올랐을 때보다 더 기쁘다며 눈물을 흘린 박세리의 마음, 그 마음을 돌로 깎아 낼 수 있을 것 같아요.”라는 조각가 한용진 씨.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는 1963년도에 뉴욕에 와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을 하며 뉴욕 토박이가 되어갔다. 한국이 비좁기만 했던 시절 꿈을 펼치려 뉴욕으로 모여들던 한인 예술가들에게 든든한 정신적 기둥이 되어 주었다. 80년대 90년대를 거쳐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한인 아티스트들에게 그는 명실공히 ‘대부(God Father)’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6월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 위치하고 있는 고급 불란서 아르데코 가구점 ‘메종 제라르( Masion Gerard)에서 있었던 한용진 씨의 회고전 “조용한 심오함(Quiet Profundity)”전에서다. 오프닝 리셉션에 찾아 온 뉴욕 각계각층의 한인 예술인들은 마감 시간이 지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한 씨는 웨체스터 올드 타이머로서 지난 2008년도 본지에 엘렘스포드 자택에서 후배 작가들과 함께한 모습을 보여 주었었다. 그 후 한국에서의 설악산 야외 조각공원 기획전으로 뉴욕을 떠난 후 2011년도부터 제주도에 머물며 작업과 전시를 해왔다. 그러다 예고도 없이 회고전을 열면서 잠시 떠나 있던 고향을 찾듯 다시 뉴욕으로 오게 된 것이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친지와 후배들이 ‘메종 제라르’ 전시장을 메우며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던 한 씨를 환영하고 축하를 아끼지 않았다. 밤이 깊어가는 전시장 앞거리에서 수많은 예술인들이 삼삼
오오 환담을 하던 모습은 최근 이곳 한인 아트세계의 분위기로는 드물게 보는 화합의 자리였다.
“후배들이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주었지요.”라는 한 씨는 8월 22일 전시가 끝난 후 얼마 전 엘렘스포드에 새로 마련한 콘도에 머물며 외출을 삼가고 있다. 인터뷰 요청을 한사코 거절하는 한 씨는 이제 80을 넘긴 나이를 부인할 수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전화 인터뷰 중에 열정적으로 자신의 인생철학을 토로한다.
한국을 방문해본 적이 없는 시인 타고르가 한국을 ‘동방의 빛’이라고 표현 것은 분명 일본인들이 가져간 이조백자를 봤기 때문일 것이라며 한국의 진정한 미는 바로 하얀 달 항아리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요즘 순수성과 도덕성을 잃어 가는 한국의 분위기를 한탄하면서 그는 부디 ‘천부경’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천부경’의 첫 줄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시작도 없이 시작되었다.’는 걸 이해하는 데에 3년이 걸렸다며 그러나 아직도 다 터득한 것 같지 않다고 말한다. 단군 시대에 우주의 원리를 새겨놓은 ‘천부경’에서 한인 고유의 사상 뿌리를 찾고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기상천외한 현대 미술 속에서 유난히도 고집스럽게 석수장이처럼 돌멩이를 다듬어 온 그의 작품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뉴욕의 아트 평론가들에게 그야말로 ‘심오한 조용함’으로 다가갔다. 수 만년 물에 씻겨 다듬어진 강가의 돌맹이처럼 한 씨의 돌 작품들은 돌덩어리 원래의 단단함과 거치름을 초월해 낸 수행자의 마음처럼 조용하고 깊기만 하다.
수십년을 부인 화가 문미예씨와 함께 했던 어빙톤 자택의 스튜디오를 부인이 세상을 떠난 후 한동안 혼자 사용해 왔으나 결국은 비싼 세금 때문에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는 말을 들으며 뉴욕 한인 예술 역사 하나를 제대로 간직하지 못한 한인 커뮤니티로서의 자책감을 느꼈다.
화가가 쓰던 창고를 뮤지엄으로 보전하여 후세들에게 물려주는 서양 문화를 따라가기엔 아직은 역부족인가 보다. 한 씨가 빠른 시일에 쌓인 피곤을 풀고 훤칠한 키의 멋지고 건강한 모습을 다시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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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려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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