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시(弓矢)의 예(銳)나 이(利)는 우리나라를 당할 나라가 없다.” 임진왜란이란 국난을 통해 실전을 경험했던 유성룡이 일찍이 한 말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수광은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활은 조선이고 창은 명나라이며, 총은 왜국이다.”
‘문약(文弱)에 빠졌다’-. 조선조 500년에 대한 평가다. 문(文)만 숭상하다보니 국방이 허술해졌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그 조선조에서도 활쏘기는 면면히 이어져온 국속(國俗)이었다.
책 읽는 것이 평생의 업(業)이다. 그런 선비들도 결코 활쏘기만은 게으르지 않았다. 또 고을마다 향사(鄕射)라는 것이 있어 명절이면 부녀자들도 나와 겨루었을 정도로 활쏘기는 국민 스포츠나 다름없었다.
동이(東夷)의 나라 한국에서 명사수, 신궁(神弓)에 대한 이야기는 때문인지 고대는 물론이고 조선조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태조 이성계의 활솜씨는 전설에 가깝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충무공은 평소 연습 때 50발을 쏘면 45발 이상을 명중시킨 것으로 나온다. 22대 임금 정조도 신궁의 수준이었다. “내가 요즘 활쏘기에서 (50발을 쏘아) 49발을 맞히고 그치는 것은 모조리 다 명중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라는 말까지 남겼을 정도다.
활은 총기가 나오기 전까지 조선시대의 대표적 무기로 각궁(角弓)과 편전(片箭)은 일종의 비밀병기였다. 각궁은 무소뿔을 재료로 만든 활로 탄력성이 탁월하고 그만큼 파괴력이 강하다.
편전은 화살 크기가 작아 ‘애기살’이라고도 불리는데 대롱에 화살을 놓고 쏘아 사거리가 1km가 넘는다. 또 관통력 역시 엄청나 조선의 가장 중요한 비밀병기로 활용됐었다.
리우 올림픽 양궁단체전에서 한국 선수단이 남녀 동반우승을 이룩했다. 특히 여자단체전에서 달성한 8연패 기록은 올림픽 전 종목을 통틀어 3번째의 대기록이다.
한국 양국은 왜 그토록 강한가. 수 천 년 동안 활과 함께 살아왔다. 그 동이족의 DNA때문일 수 있다. 일면 수긍이 간다. 거기에 또 다른 요소들이 첨가된다. 선수선발의 공정성과 끊임없는 연구와 전략개발이다.
오늘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도 다음 대회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예외 없이 열 번 치러지는 선발전에서 한 차례라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그대로 탈락이다. 무명선수도 실력만 있으면 언제든지 대표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궁도에는 아홉 가지 계훈(戒訓)이 있다. 주로 마음을 다스리는 일종의 심법이다. 그 계훈을 현대적으로 적용시켰다. 강풍이 몰아친다. 관중의 야유가 진동한다. 그런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고요함을 유지하는 한국 형 훈련법이 그것이다.
‘양궁장비 국산화 100%’도 빠질 수 없는 요소다. 한국인의 체형에 맞도록 스스로 활을 제작했다. 그 한국산 활의 우수성이 인정되면서 미국, 일본제품을 몰아내고 세계 양궁시장에서 한국 활 점유율은 50%에 이르게 된 것이다.
선수선발에 있어 철저한 투명성, 그리고 끊임없는 연구가 선수는 물론 지도자, 그리고 제품에 이르기까지 ‘한국 양궁 세계 1등’, 신궁의 나라를 만든 것이다. 파이팅! 한국 양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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