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구, ‘Reminiscence-clouds’
저물 무렵
무심히 어른거리는 개천의 물무늬에
하늘 한구석 뒤엉킨
하루살이떼의 마지막 혼돈이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바라보려 한다.
뜨거웠던 대지가 몸을 식히는 소리며
바람이 푸른 빛으로 지나가는 소리며
둑방의 꽃들이
차마 입을 다무는 소리며
어떤 날은 감히 그런 걸 들으려 한다
어둠이 빛을 지우며 내게로 오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를
내 속에도 둥글게 새겨넣으며
가만 가만히 거기 서 있으려 한다
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한 어둠 하나
옹이로 박힐 때까지
예전의 그 길, 이제는 끊어져
무성해진 수풀더미 앞에 하냥 서 있고 싶은
그런 저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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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 무렵 사색의 길을 떠나는 한 사람의 모습이 고요하다. 낮이 인간의 길이라면 밤은 자연의 길이다. 소란하던 빛을 지우며, 한 여름의 저녁이 수풀더미 무성한 침묵을 열고 있다. 저 어스름 속에 한낮을 살아온 벌레들의 짧은 생이 있고 제 안의 작고 보드라운 영혼을 더듬는 꽃들이 있다. 어둠이 없다면 휴식도 성숙도 없을 것이다. 몸속을 빠져나가지 못했던 욕망 하나, 그리움 하나, 혹은 슬픔 하나, 옹이처럼 낮고 평화롭게 어둠 속에 익어간다. [임혜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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