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불문하고, 흑인이 이 땅에 살기 시작한 이래, 모든 흑인 엄마와 아버지는 자식을 직면해야 했다. 그리고 아이가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방법, 경멸당하며 살 아이가 어떻게든 스스로를 경멸하지 않게 할 방법을 내면에 심어주려 애를 쓴다.”
흑인 작가, 제임스 볼드윈이 1964년에 쓴 글이다. 지금은 2016년. 52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흑인이 대통령이 될 만큼 세상이 바뀌었지만, 흑인 아버지들의 자식 걱정은 여전하다.
프린스턴 대학의 아프리칸 아메리칸 학과 과장인 에디 S. 글라우드 박사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지난주 타임지에 기고했다. 지난 5일 루이지애나에서 알턴 스털링이라는 흑인이, 다음날에는 미네소타에서 역시 흑인인 필랜도 캐스틸이 백인경관들의 총에 사살된 후 아들을 걱정하면서 쓴 편지이다. 그의 아들은 브라운대학의 아프리카학과 3학년생이다.
“알턴 스털링의 아들이 기자회견 중 흐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너를 생각했다”고 편지는 시작되었다. 근년 이슈가 된 백인경관의 흑인 총격사건들을 언급하며 그는 아들이 이런 현실에 눈을 떴을 시기로 4년 전을 꼽았다.
지난 2012년 플로리다에서 17살의 흑인소년 트레이본 마틴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백인 방범대원의 총에 맞아 사망했을 때 그의 아들은 15살이었다. 사춘기로 한창 예민하던 그때이후 아들은 이 사회의 어떤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그는 보았다.
아버지로서 아들이 절대 마주하지 않았으면 싶은 그 사실이란 바로 “경찰은 아무 이유 없이 우리를 죽일 수 있다는 것, 보호받을 길은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인) 나도 너를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이어 2014년 11월 12살짜리 흑인소년이 장난감 총을 가지고 놀다 경관들의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클리블랜드 대배심이 이들 경관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렸을 때, “우리는 공항에 있었지. 너는 큰 소리로 욕을 하며 덫에 걸린 짐승처럼 마구 서성거렸지.”
인종차별 현실에 격분한 어린 아들에게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고 했다. 그 자신에게 너무도 익숙한 분노, 하지만 아들이 같은 분노에 휩싸인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이 세상의 추악함 그리고 일부 백인들의 끔찍함이 너의 내면을 더럽힐 까봐, 그래서 네 전염성 강한 미소를 걷어내고 늘 찌푸린 얼굴로 만들어 버릴까봐 걱정”이라고 그는 아들에게 썼다. 편지는 이어졌다. “네가 다시 7살이면 좋겠다. … 집에, 우리와 함께 있으면 좀 더 안전할 테니 말이다.”
모든 부모는 자식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미국 흑인부모들의 걱정에는 대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걱정은 말 그대로 생과 사의 문제. 아들이 혹시라도 말 한마디 잘못해서, 행동 한번 잘못해서 경찰 총에 맞아 죽으면 어쩌나 매일 걱정이다. 아버지가 명문대학 교수라도, 아들이 명문대학 학생이라도 다르지 않다. “너에 대한 걱정은 내가 죽는 날까지 멈출 수 없을 것”이라고 앞의 아버지는 편지를 끝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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