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동생의 박사 과정 졸업식이 있었다.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며 녹록치 않은 과정을 거쳐 받은 학위라 한국서 친정 부모님이 오셨고, 우리는 장장 8시간을 운전해 동생의 졸업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사실 나는 졸업식 다음날부터 서너 개의 출장이 연달아 있었다. 출장 준비해야지, 장기간 집을 비우니 아이들 스케줄 챙겨야지, 부모님 모시고 장거리 여행 해야지… 동생 졸업식 참석 외에도 머리가 복잡했던 나는 잔뜩 예민해져서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과 제대로 대화할 여유가 없었다.
목표가 정해지면 최단거리로 도달해야 하는 ‘효율 중독’인 나와 참 반대인 엄마는, 그 와중에 동생이 공부하면서 신세진 분들을 초대해야 할지 모른다며 출발하기 직전에 장을 보셨다. 오고 가는 시간이며, 그곳에서 이사를 나와야 하는 동생의 상황을 생각하면 한참 빠듯한 일정인데 굳이 직접 요리해서 손님들을 대접하겠다는 엄마에게 나는 짜증을 내고 말았다.
“꼭 이렇게 하셔야 겠어요?”엄마는 내 눈치를 보면서도 끝내 원하는 재료를 사셨다.
예상대로 나는 졸업식에 와준 동생의 지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아이들과 부모님을 챙기며 동생의 이삿짐 싸는 걸 돕느라 정신이 없다가,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바로 출장길에 들어섰다. 엄마는 동생의 지인들을 초대해 준비한 음식을 대접하고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셨다.
일은 꼭 바쁠 때, 그것도 한꺼번에 찾아온다. 한달 사이에 몇 나라를 연거푸 다녀야 했다. 심신이 지치고 고단했지만 다행히 결과가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 출장지는 한국이었다. 일정을 보니 일 끝나고 하루 정도 친정 부모님을 뵐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에게 연락해 밤늦게 도착할 예정이니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말씀 드렸는데, 비오는 밤에 들어올 딸이 걱정돼 굳이 픽업을 하러 나오신 엄마와 엇갈리는 바람에 집 밖에서 30여분을 기다려야했다.
시력이 부쩍 약해져 밤에 운전하는 게 힘들다면서 뭐 하러 이 밤에 나오셨냐고… 화내지 말아야지, 참아야지… 연로하신 엄마가 나보다 더 피곤하실 테지… 하면서도 출장 끝에 잔뜩 지친 상태로 바깥에서 한참 기다리다 보니 눈이 감겼다.
친정에 기껏 하루 머물면서도 학생들 과제 채점을 하느라 엄마랑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엄마는 뒤늦게 석사 공부를 시작하셨는데 논문이 안 써진다며 내가 좀 도와주기를 바라는 눈치였으나 나는 내 분야가 아니라 잘 모른다며 슬쩍 발을 뺐다. 쉬러 왔는데 또 뭔가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내심 귀찮았다.
돌아오는 날, 엄마는 고구마를 찌셨다. 나는 고구마를 좋아하지만 엄마가 또 이것저것 싸 주실까봐 미리 “됐어요…” 하고 말았다. 내 거절에 익숙한 엄마는 하나만 먹어보라며 그 중에 제일 큰 고구마를 골라 주셨다.
가는 차 안에서 고구마를 꺼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끊임없이 주려는 엄마의 모습과 그런 엄마 앞에서 끝까지 이기적인 내 모습이 겹쳤다. “잘 먹을게요!”하고 덥석 받아 왔더라면 엄마가 얼마나 좋아하실지 알면서도, 내 아이들한테는 자동 발사되는 그 미소 한번이 잘 안 지어 진다.
며칠 전 한국 드라마 ‘디어 마이 프랜드’를 보는데 “세상 모든 자식들은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다. 우리 다 너무나 염치가 없으므로…” 하는 대사를 듣고 울었다. 작가가 현실을 지독히도 잘 안다. 맞다. 우리는 슬퍼할 자격도 없다.
<
지니 조 마케팅 교수·컨설턴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