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 본사를 둔 아마존에 근무하다보니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장을 왔다가 시애틀에 잠깐 들리는 분들과 식사를 할 기회가 종종 있다. 대기업 사장부터 스타트업 개발자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새삼스럽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걸 깨닫게 된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스타트업은 스타트업대로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진지한 고민들을 하고 있고, 그런 고민들을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내가 도움을 주기보다는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
이런 자리에서 종종 받는 질문이 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과 미국에서 일하는 것 중 어떤 게 더 힘들어요?” 혹은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랑 아마존이랑 일할 때 어떤 점이 다른가요?”와 같은 질문들이다. 그럴 때마다 일단 “사과랑 오렌지처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고 입을 열곤 한다.
올해는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 동기들이 꼬박 10년을 채우고 11년차가 되는 해이다. 신입사원으로 함께 입사했던 친구들이 어느덧 과장님 차장님이다. 나는 대리로 승진하고 얼마 안 있다가 퇴사했기 때문에 근무하는 동안 거의 팀의 막내였다.
반면에 지금 아마존에서는 중간 간부의 직함을 달고 일하고 있다. 비슷한 직급으로 한국에서 일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양쪽 직장경험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것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직급이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히 연차가 높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연차에 비례하여 지식과 경험이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어렵고 더 복잡하고 더 불확실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할 것이다.
짧게나마 한국회사와 미국회사를 경험해 본 바에 의하면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 회사들의 경우 각 직급에 대한 기대치가 문서화 되어 있을 정도로 명확하고 그 기대치를 넘어서거나 못 미쳤을 경우에 주어지는 상벌이 (대부분의 경우) 무서울 정도로 명확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중간 간부급이 가장 일을 많이 하고 성과도 많이 낼 때라고 한다. 사원에서 임원에 이르는 조직의 피라미드를 반 이상 올라오며 회사 내외부 사정에 정통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딱 이때부터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이 더욱 가팔라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요즘 나도 일하면서 책임감이나 무게감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긴 오르막이 눈앞에 펼쳐진 기분이랄까. 가끔은 그 오르막의 경사와 길이에 지레 겁이 나기도 하고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 길의 어느 지점까지 갈 수 있을까. 이 길 위에서 나는 무엇을 놓치게 되고 무엇을 얻게 될 것인가.
20대와 달리 30대는 안정되어 보이지만 치열한 나이대인 것 같다. 또래들의 페이스북을 보다보면 즐겁고 신나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직장생활이나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들을 써놓은 글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힘내라는 답글을 꼭꼭 적어놓는다. 어쩌면 그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각자 다양한 고민들을 하고 있겠지만 다들 각자의 속도로 주어진 오르막을 잘 걸어가고 있는 듯하다. 누구는 삶의 동반자와 손잡고, 누구는 쌍둥이를 들쳐 업고 더 막중해진 책임감으로 씩씩하게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언젠가 직장생활에서 내리막이 온다고 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남은 30대 그리고 다가올 40대의 오르막을 모두 힘내서 걸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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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정/ 아마존 선임 프로덕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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