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싱그러운 아침을 새들의 합창으로 시작한다.
피곤도 모르고 눈치도 없는 새들은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온 동네 동료들을 불러 모아 합창을 시작으로 독창, 중창, 장르도 다양하게 노래를 한다. 가지마다 초록 물결이 넘실거리는 창가에 다가가 자연이 주는 평안함을 음미하며 긴 호흡으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하며 오감을 통하여 느끼는 단순한 이치를 새삼스럽게 마음에 듬뿍 채워 두고 싶다.
빨간 페인트를 뒤집어 쓴 장미가 가시를 숨긴 채 향기로만 사랑을 태우겠노라 붉은 입술을 연다. 어린 시절 화장하던 엄마 옆에서 눈치 봐 가며 찍어 바르던 립스틱 뚜껑에도 장미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장미향이 아닌 쿰쿰한 냄새가 났었다. 뉴욕의 퀸즈에 있는 한 건물 8층에서도 똑 같은 냄새를 맡는다. 수술 후에 재활을 목적으로 들어 온 빌딩에서 벌써 2년을 넘겼다 계절이 몇 번 이나 반복되어 다시 여름이 코앞인데 네발 달린 굴러 가는 의자에서 유유히 미소만 건낸다.
처음에는 3층에 배정 받았는데 한국 사람이 없어서 말 수가 없는 엄마는 아예 입을 닫고 살다시피 했다. 몇 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한국 사람이 모여 있는 8층에 방이 비었다고 해서 이사 아닌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엄마를 찾아 가는 발걸음은 어느새 무덤덤해지고 연민만 깊어진다.
갈 때 마다 환하게 맞아 주는 얼굴에는 표류하는 심사가 가득 한데 그냥 웃으며 손만 잡는다. 답답함도 있으련만 다 괜찮다고 한다. 다이닝룸에 모여서 낯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른 엄마들의 모습도 비슷하지만, 또 제 각각 이기도 하다. 허허로이 하늘만 올려다보기도 하시고 , 못 알아듣는 말로 중얼거리는 분도 계신다.
엄마와 제일 친하다고 하시며, 엄마 동생임을 자처하는 할머니도 계시고, 우리 부부를 볼 때 마다 “참 좋다” 만 반복하시는 웃음이 포근하신 엄마도 계신다. 자식이 멀리 있어서 자주 못 온다고 하시면서 그래도 괜찮다고 서운한 마음을 애써 달래신다. 지나온 날들의 기억이 하나 둘 묻혀 가는 모습들을 간간히 목격 하게 될 때는 형태 없는 슬픔이 목젖을 짓누른다. 그러나 계절은 잊었지만 시간에 집착하지 않고, 고뇌와 싸우지 않아도 호흡할 수 있는 불평 없는 삶은 그저 감사함이다.
물결치는 세상에서 느긋하게 살기를 선택하고 고난도 절망도 다 이겨 냈는데, 불편한 몸이 되어 마음까지 묶여 상처가 될 까봐 돌아 서는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럽다.
엄마가 내 무릎에 누울 때가 몇 번 있었다. 사십 고개를 넘기면서 흰머리가 하나씩 보일 때 마다 엄마의 머릿속을 헤집고 용돈을 벌었다. 때로는 수고의 대가를 맛있는 간식으로 대신 하기도 했다. 이제는 반백이 되어 힘없는 머리카락이 엄마의 소망이 되어 흘러내린다. 휠체어를 밀고 복도를 따라가 창가에 세우고 빌딩 밖 세상을 낯설게 구경한다. 청명한 하늘 위로 비행기가 날쌔게 사선을 그리고 사라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앙상하던 가지 위에 진초록 잎새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뜨거운 햇살 아래 분주한 사람들이 교차하며 땅을 밟고 지나간다. 엄마의 간절한 소망은 두 발로 걷는 것이다. 8층에 계신 대부분의 엄마들이 야곱이 씨름 하듯이 사다리를 오르내린다.
간절한 마음이 승화되어 하늘에 닺기까지 삶이 사랑이 되어 간다. 그러기에 그냥 다 웃고 그 때를 마냥 기다리신다. 모두 뛰어 나가 실 수 있도록 마음의 평안을 생명처럼 붙들고 건강하시길 바란다. 동생이 가끔 발라 주는 빨간 매니큐어가 두 손에 꽃처럼 소담스럽게 피는 날 장미 빛 립스틱으로 정렬의 여름을 발라 주고 아카시아꽃 노래도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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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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