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영화 ‘비포 미드나잇’에서 두 주인공 제시와 셀린느가 차에서 나눈 대화를 자그마치 10분 동안 원 테이크로 찍은 부분이 있다. 내가 단연 최고로 꼽는 장면이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지만 헤어지고 어느덧 41세가 되어 만나게 된 두 남녀의 대화에는 소소한 주제로 깔깔 댈 만큼 농익은 편안함이 배어있었고 서로 과거의 진심을 떠볼 만큼의 간지러운 긴장감도 묻어있었다.
한 달 전 나는 우연히 예전 남자친구와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이 장면에 담긴 모든 감정을 비로소 조금이나마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연애하면서 한 번도 싸운 적이 없다는 커플들이 있다. 마치 천생연분의 증표인 것처럼 달콤하게 들리긴 하지만, 제시와 셀린느처럼 많은 다툼을 거친 커플들에게는 그들에게 없는 여러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법과 한층 단단한 사랑이 있을 수도 있다.
연인들 사이에 벌어지는 언쟁의 대부분은 누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것이 아니고 서로가 얼마나 다른가에 기초한다. 그 다름을 얼마만큼 포용해줄 수 있는지, 몇 발짝이나 더 다가갈 수 있는지 판단하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지쳐가는 상대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미안한 동시에 실망스러운 것도 없다. 그러나 반복되는 언쟁에 지칠 대로 지쳐 보이는데도 끈을 놓지 않고자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건네는 일상적인 질문만큼 진한 감동이 되는 것도 없다.
나는 모든 것에 적극적이지만 유독 연애에는 소극적이다. 그 이유는 상대에 따라 연애의 무게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초반에 그것을 가늠하는 것이 어려워 특히 시작에 늘 신중하다. 그리고 관계가 한층 깊어질 때마다 나는 새로운 책임을 발견한다.
상대방의 가치관을 존중해 줄 수 있는 마음, 자존심을 굽히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 희생정신 등. 그리고 나는 무엇이 얼마큼 부족한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즉 사랑이란, 다른 사람을 통해 나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나’라는 사람은 상대에 따라 조금씩 변한다. 옛 남자친구와의 시간 속에 존재했던 나는, 다른 사람의 여자 친구인 현재의 나와 많이 달랐다. 나의 기본적인 성향은 변하지 않지만, 내 안에 내재된 성향들을 끄집어내는 것은 상대의 역할이 크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나의 자유분방한 면모를, 또 다른 이는 나의 순종적인 면모를 더 극대화한다. 어떤 이는 나의 이성적인 모습을, 다른 이는 나의 감정적인 모습을 더 도드라지게 하지만 그 모두가 결국 ‘나’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이라는 유동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있는 나의 정체성를 계속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나’가 가장 나다운지 생각한다. 어떤 사랑이든 성격 및 가치관 차이 등으로 인한 성장통이 불가피하겠지만, 궁극적으로 가장 나다운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해야 하지 않겠는가.
두 사람 모두 관계 속에서 싹튼 자신의 정체성이 마음에 든다면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것이다. 상대를 통해 더 발전할 자신에 대한 설렘과, 자신 때문에 더 멋있어질 상대에 대한 책임감으로 더 오래 균형 잡힌 사랑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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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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