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밤을 지새웠다. 앓는 소리도 삐뚤어진 입으로는 제대로 할 수 없는 서글픈 밤이 한없이 야속했다. 그 마음 아는지 시늉만 하던 빗줄기가 사나운 바람까지 몰고 와서 같이 설친다.
“투명하고 가지런하고 아직도 건강한 상태입니다. 관리를 정말 잘 하신 것 같네요” 몇 주 전에 치과에 가서 정기검진을 하면서 기분 좋게 들었던 한 마디만 머릿속에 어금니처럼 꽉 박혀서 이 상황이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치과에 다녀 온 후 며칠 전부터 왼쪽 위 어금니가 뻐근해 지더니 통증이 찾아오고 가벼운 음식조차 씹을 수 없게 되었다.
또 통증 후 며칠 뒤부터 바깥쪽 잇몸 사이에 이물질이 느껴졌고, 아무리 조심을 해도 왼쪽 혀를 자꾸 깨물게 되니 음식을 먹을 때 마다 입만의 긴장을 해제시킬 수 가 없었다. 큰 입을 벌려 아무리 살펴봐도 가지런히 정렬된 뽀얀 미소들만 반짝일 뿐 이 아픔의 근원을 찾을 수 없어, 발전해 가는 상상이 불안한 생각을 점점 키워 나갔다. 나
도 모르는 사이 어딘가 병들어 어두운 시간을 건너야 한다면 무엇부터 서둘러 마무리를 해야 하는지, 심장의 고동소리는 점점 높은 파장을 일으키고, 고통도 어느 순간 사치가 되어 살며시 어디로 숨어 버렸다. 환경이 오염되고 이상 기후로 인해 몸의 생체리듬도 돌연 변이가 생겨나고, 신종 암과 각종 변이성 질병이 나타난다고 하던데 혹시 그런 병이 나에게 온 것 인가.
하기야 불행은 예고 없이 누구에게 라도 닥쳐오는 시련이 아니던가. 그래도 아직은 할 일이 남아 있고 아직은 쓸 만하지 않은가. 침대 귀퉁이에 베개를 끌고 와 반으로 몸을 접고 차창 밖에서 몸부림치는 빗줄기의 눈물을 바라보면서 두 손을 모으고 느리게 찾아오는 새로운 아침을 기다림은 불평 없는 침묵의 기도로 이어 졌다.
오월의 아침은 초록이 물들어 가고 꽃들이 기지개 펴는 동시상영 화면이 펼쳐진다. 나래 접었던 새들이 일동 합창을 하면 나뭇가지 위에서 바람 타고 춤추는 숲 속의 노래가 화음을 넣는다.
살아 있는 생명은 세상 어딘가 에서 자기들만의 언어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존재를 드러낸다. 간밤에 비에 젖어 고개 떨 군 노란 꽃대가 햇빛의 기운으로 부르르 몸을 털고 일어나는 모습을 예전에는 본 적이 없다. 아니 못 보고 지나쳤을 것이다. 아스팔트 갈라진 좁은 틈새로 옹기종기 고개 내민 이름 모를 들풀로 살아도 신의 뜻이 아니면 거둘 수 없다고 나직이 일러 주는 아침이다.
어두움에 갇힌 마음의 빗장을 풀어 버리고 눈앞에 펼쳐진 청량한 아침 햇살 앞에 서니 잠시나마 타인이 되어 낯 설은 생각에 잠 못 이룬 밤을 부끄럽게 한다. 오늘까지 섭리로 나만의 그림을 그리게 하시고 앞으로도 빈틈을 채워 나가고 헤어진 곳을 때워 가며, 한 장의 그림이 완성 될 때까지 보이지 않는 손이 화필이 되어 주고, 수고의 땀방울도 닦아 주신다 하였건만 ?
“신이 만든 것 중에서 완벽한 것은 여성과 장미 두 가지 뿐” 이라고 장미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빌어 여성을 칭송 했는데, 그 장미의 계절에 사랑니의 시샘을 온 몸으로 대치하는 전투를 하고 있다. 오른손가락 하나를 깊이 넣어 잇몸을 더듬다 날카롭게 손가락 끝에 들켜 버린 더부살이가 시작된 사랑니를 찾았다.
숨어 있던 사랑이 이제 서야 이빨을 드러내는 이유가 알 길 없어 다시 치과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니 마지막 어금니 끄트머리 저 구석에 옆으로 누워 버린 사랑니가 시위를 하고 있다. 사랑이 시작 될 나이에 사랑만큼 고통스럽게 찾아 온 다고 이름 하여 사랑니라 한다는데, 나의 사랑은 아직도 철들지 않고 눈물만 닦아 낸 기다림 이었나.
화려한 장미의 계절에 하얀 꽃 머리를 단장하고 사랑 보다 아픈 이별을 예약하러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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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선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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