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미국은 노예 문제로 들끓었다. 그 이유는 미 중서부곡창 지대인 캔자스와 네브라스카를 주를 받아들이는 문제를 놓고 노예제 폐지론자와 존속론자 간에 양보할 수 없는 한 판승부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노예제 문제는 미국 건국 때부터 시비 거리로 상존해 있었다.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건국이념에 비춰보면 노예제는 폐지되는 것이 마땅했다. 그러나 대다수 남부 주들은 목화 산업에 경제를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고 이는 노예 없이는 불가능했다. 1787년 연방헌법이 제정되고 이에 기초한 연방 정부가 탄생한 이후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 역사는 이 문제에 관한 불안한 타협의 연속이었다.
이런 타협 중 가장 중요한 것은 1820년의 ‘미주리 타협’이었다. 미주리를 새 주로 받아들이면서 남부와 북부 지도자들은 북위 36도 30분 이북에 있는 영토에서는 노예제를 불법화하기로 합의했다. 30년 가까이 잘 지켜지던 이 타협안은 1848년 미국이 멕시코와의 불법 전쟁을 통해 얻은 새 영토 처리 문제를 놓고 위기를 맞는다. 남부 주들이 새로 생긴 방대한 영토의 상당 부분에 해당하는 북쪽 땅에 노예제를 금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들고 일어선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캔자스와 네브라스카에서의 노예제 채택 여부는 주민들이 결정하도록 한다’는 내용의 ‘캔자스네브라스카 법’이다.
이번에는 노예제 폐지론자들이 불끈했다. 남부 주들이 주도하는 민주당과 무력화된 현 휘그당으로는 미국을 올바로 이끌어갈 수 없다고 판단한 민주당 탈당파, 휘그당원 등 정치인과 ‘자유 토지당’ 등 노예제 폐지 운동가들은 1854년 2월 28일 위스콘신 리폰에 모여 새로운 당을 창설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그뒤 1854년 7월 6일 미시건 잭슨에서 전당 대회를 열고 공직자후보를 선출하고 정강 정책을 채택했다. 위스콘신과 미시건이 모두 공화당의 탄생지임을 주장하는이유는 이런 까닭이다.
공화당이 태동한 위스콘신에서 지난 5일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온갖 허무맹랑한 발언에도 불구하고 승승장구하며 공화당 대선 후보 중 선두를 달리던 도널드 트럼프가 예선에서 테드 크루즈에게 참패당한것이다. 크루즈 부인을 모욕하고,기자에 폭력을 행사한 캠페인 매니저를 옹호하며, 낙태에 관해 이랬다 저랬다 하는 등 스스로 표를 깎아먹기도 했지만 이번 패배의 근본 원인은 위스콘신 유권자들의 수준이 딴 데보다 높기때문이라고 봐도 좋다.
이들은 공무원 노조와 세 차례나 건곤일척 승부를 벌이며 주 재정을 탄탄하게 한 스캇 워커주지사와 온건 개혁파인 폴 라이언 연방 하원의장을 통해 트럼프의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가를 잘 알고 있었다. 위스콘신 대의원 수는 42명에 불과하지만 독특한 승자 독식제를 택하고 있어 트럼프는 이들을 거의 크루즈에게 빼앗겼고 이와 함께 자력으로대의원 과반수를 얻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공화당의 발상지답게 진짜 공화당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 위스콘신 유권자들의 노고를 치하해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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