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구 ‘회상’
아직 일 년은 준비 기간이 필요 하겠어
늦어도 내일은 한 세기의 이야기가 그대로 담긴
위대한 책을 쓰기 시작할거야
태양은 바른 자와 사악한 자 위에 똑 같이 떠오르고
봄과 가을은 한 치의 착오도 없이 반복될 것이며
촉촉한 잡목 숲엔 개똥찌바귀가 진흙으로 안을 발라 집을 짓고
여우들은 그들의 여우같은 삶을 익혀가겠지
그리고 거기엔 반드시 첨부해야 할 게 있어. 그것은: 온갖 목소리로
욕의 합창을 하며 얼어붙은 평원을 가로질러 질주하는 군대들.
골목 모퉁이에서 거대하게 다가오는 대포 탱크; 저물 무렵
감시탑과 철조망의 캠프로 돌아가는 저 행렬
아냐, 내일은 안 되겠어. 한 5년이나 십년쯤 있어야겠어.
나는 아직도 어머니들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고
여인의 몸에서 난 인간이 대체 무엇인지 묻고 있어.
그는 거친 군화의 발길질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웅크리지; 불이 붙은 채 달리고,
타오르는 거친 화염에 화상을 입고; 불도저가 그를
진흙 구덩이에 밀어 넣어버리지.
여인의 아들, 곰 인형을 끌어안은. 엑스타시에서 잉태된 그.
아직, 나는 말하는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 침착하게.
임혜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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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슬라브 밀로즈는 시는 폐허에서 태어난다고 했다. 스스로를 사실주의 시인이라고도 불렀는데, 인간의 잔혹성에 너무 화가 나서 진상을 침착하게 시로 쓸 수 없다고 울분 하고 있는 이 시는 그 두 가지 면모를 다 보여준다. 십년은 있어야 제대로 된 시를 쓸 수 있을 거라는 반어를 통해 그는 전쟁과 학살의 잔인성에 겹쳐지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더욱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폐허 위에 쓰여진 시가 빛나는 것은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희망과 사랑 때문일 것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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