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쾌하다. 짜릿하다. 그 뒷맛이 아직도 감미롭다. 프리미어12 야구대회 준결승전, 한국과 일본의 대전을 말하는 거다.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스코어는 여전히 3대0. 그리고 맞은 9회 마지막 이닝. 이대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체념의 순간. 그러나 대역전극이 마련돼 있었다.
국가대표, 그러니까 에이스 중 에이스들 간의 대결이다. 그런 국제 시합에서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3대0으로 끌려 다니다가 일거에 4점을 뽑아 역전시킨 것이다. 반드시 한일전이 아니더라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한 대역전 드라마였다.
입을 굳게 다문 일본의 감독, 그 침통한 표정. 순간 떠올려지는 것은 ‘휴브리스(hubris)’란 단어다. 보통 오만으로 번역되는 고대 그리스에서 쓰이던 말이다.
한 지도자의 지나친 자신, 휴브리스는 페리페테이아(peripeteia-운명의 역전)를 불러온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것은 네메시스(nemesis-응보)다. 그리스 비극의 정석이다.
준결승을 앞두고 결승전에 나갈 투수 명단을 발표했다. 그러니까 한국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게 일본 감독의 태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한국의 역전승. 그 오만의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이는 그래야 단순한 스포츠게임일 뿐이다. 정치지도자, 혹은 군부지도자들의 휴브리스는 때로 엄청난 참화를 불러온다. 그 케이스의 하나가 노일전쟁이다.
애당초 일본군을 우습게 알았다. 그런 러시아는 발트함대를 동원해 무려 1만8,000마일을 항해해 극동지역으로 파견하는 무리를 범했다. 그 러시아 함대를 격파한 것이 도고 헤이하치로다.
쓰시마 해전으로 불리는 그 해전의 승리 가운데에는 그러나 40년 후의 비극,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싹이 숨겨 있었다는 게 역사학자들의 진단이다.
훗날 진주만 기습작전을 계획한 야마모토 이소로쿠는 초급장교로 그 해전에 참전했다. 그 승리에 감격했다. 그러나 거기서 싹튼 것이 일본군국주의의 턱없는 우월의식에, 오만감이다.
그 끝없는 오만은 중국에 이어 미국침공으로 이어졌고 야마모토가 이끈 일본해군은 미드웨이해전에서 참패, 일본은 결국 핵폭탄 세례를 받기에 이른다.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역사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 용어를 빌려왔다. 정권을 잡은 창조적 소수가 자신들의 성공 방식을 절대적 진리인 양 우상화해 실패하거나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싸고 한국사회 곳곳에서 빚어지는 갈등도 바로 이 휴브리스의 탓이 아닐까. 걸핏하면 색깔논쟁으로 몰아간다. 그럴 때마다 재미를 봤다. 정부여당의 입장이다. 반면 미친 소, 광우병 난리의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 거리로 나가는 거다. 야권의 입장이다.
“이 휴브리스 증세가 심해지면 추종자에게 복종만 요구 한다. 도덕적 균형을 상실하고 판단력을 상실한다.” 토인비의 충고다. 휴브리스가 만연한 사회는 그래서 위험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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