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의 한 구청장이 자기 자녀 결혼식에 무려 1,900장의 청첩장을 돌렸다가 구설에 올랐다. 청첩장을 받은 이들의 상당수는 구청장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가운데 결혼식에는 900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청첩장을 마구 뿌려댄 구청장의 ‘속셈’은 너무 뻔하다. 공직에 있을 때 자녀 결혼식을 통해 한 몫 단단히 챙기겠다는 것이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경조사를 재테크로 활용하려는 개념 없는 공직자들의 전형적 사례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결혼식이 당사자들 보다는 부모 중심의 행사가 되곤 하는 것이 한국의 결혼문화다. 부모들은 자신의 지인들이나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자녀 청첩장을 돌린다. 청첩장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랑 신부를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이들이다. 단지 부모 얼굴을 보고 결혼식에 참석해 축의금을 낸다.
오고 가는 청첩장은 마치 ‘고지서’ 같다. 받는 입장에서는 부담스럽다. 축의금 때문이다. 물론 주는 입장에서도 고민은 있다. 하지만 안 돌리자니 결혼식 비용이 부담스럽고 그동안 내온 축의금 본전 생각도 난다. 그러면서 축의금은 받는 만큼 주고 준만큼 받는 ‘공평 거래’가 돼 버렸다. 최근 일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독특하고 검소한 결혼식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 주류는 아니다.
미국의 결혼식 문화는 한국과 다르다. 신랑과 신부의 친구, 지인들을 중심으로 치러진다. 신랑 신부를 전혀 모르는 부모 지인들이 초청되는 경우는 드물다. 남가주의 유명한 이벤트 디자이너인 영송 마틴씨는 저명인사들의 결혼식을 많이 담당했다, 그는 할리웃 유명 스타들의 결혼식 하객은 대체로 100명을 넘지 않는다며 “결혼식이 무조건 작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의무적으로 오는 사람들이 아닌, 진심으로 축하해줄 사람들로 식장이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주 한인들의 결혼문화는 한국과 미국의 중간쯤으로 보면 된다. ‘절충형’이라 할 수 있다. 부모와 관련된 하객들도 초청되고 당사자들의 친구와 지인들도 많이 참석한다. 그러나 그 비중은 갈수록 신랑 신부 중심으로 기울고 있는 추세이다. 결혼 커플은 웨딩플래너를 고용해 결혼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준비한다. 부모의 하객들을 위해서는 제한된 좌석을 할당한다.
또 교회에서 결혼식 올리고 친교실에서 피로연을 갖던 그동안의 형태에서 벗어나 전문 웨딩홀이나 골프장 클럽하우스 등에서 식을 올리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예식 중심’에서 ‘연회 중심’으로 결혼식 문화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보험업을 하는 유모씨는 최근 친구 자녀 결혼식에 자주 참석하면서 식장을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결혼적령기가 된 딸이 기독교인임에도 “교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기 때문이다. 식을 끝내고 하객들과 한바탕 어울리며 결혼을 유쾌한 축제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게 젊은 신랑 신부들이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당연히 인생의 새로운 첫걸음을 내딛는 커플이다. 그런데도 결혼 당사자들은 뒷전이기 일쑤고 부모가 자신의 하객들을 챙기느라 분주한 한국식 결혼식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 오롯이 신랑과 신부에 집중하는 미국식 문화가 훨씬 더 결혼식의 취지에 부합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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