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가문과 클린턴 가문의 재대결이 될 것으로 보이던 2016년 미국 대선이 묘한 구도로 변해가고 있다. 공화당의 변두리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극좌파 버니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멕시코 정부가 강간범을 국경 너머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존 매케인은 전쟁 영웅이 아니다” 공화당 대선 후보 토론회 사회자인 메긴 켈리가 “눈과 다른 곳에서 피를 쏟고 있다”는 등 다른 후보가 했더라면 대선 캠페인을 끝장냈을 돌출 발언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후보 중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브룩클린 출신 유대인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사회주의자인 버몬트의 연방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는 애초 한자리 수의 지지율로 힐러리 클린턴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으로 점쳐졌으나 최근 시애틀과 오리건 포틀랜드, LA에서 열린 집회에서 1만5,000에서 3만에 육박하는 지지자를 모으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의 대중 연설은 숫자로나 지지자들의 열기로나 힐러리는 물론 다른 모든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다.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는 뉴햄프셔 예선에서 처음으로 힐러리를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들의 기세가 거세다지만 이들이 양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된다는 보장은 없다. 보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트럼프는 다른 후보들이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하지 못하는 말을 속 시원히 쏟아내 지지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지만 그가 후보가 될 경우 공화당의 참패는 불을 보듯 뻔하고 그의 정책이라는 것은 알맹이나 현실성이 없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공화당 유권자들은 제 정신을 차릴 것이란 분석이다.
샌더스도 마찬가지다. 부자에 대한 중과세를 통해 소셜 시큐리티의 수혜 폭을 늘리고 건강보험을 국가가 운영하는 단일 체제로 바꾸며 월가를 사실상 국가 통제 하에 두자는 그의 주장은 백인 좌파 지지자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고 있으나 민주당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흑인과 이민자, 그리고 여성들에게 그는 아직 생소한 이름이다. 자금과 조직에 있어서도 그는 힐러리와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 역시 시간이 갈수록 힐러리에 밀릴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그럼에도 극과 극인 억만장자 바람둥이 광대와 73세의 백인 사회주의자가 공화 민주 양당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미국인이 기존 체제와 정당, 기성 정치인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들 두 사람 지지자들은 전혀 딴판이지만 미국이 현재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 한다. 한쪽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를 일삼는 멕시코 불법체류자가, 다른 한 쪽은 빈익빈 부익부를 강요하는 월가의 자본가들을 문제의 근원으로 보고 있다.
공화당의 다른 후보들이 당내 경선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강경 보수파와 본선 승리를 위해 끌어안아야 할 중도파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는 것이 트럼프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고 있다면 연설 한 건 당 미국인 연평균 가구 소득의 5배를 벌면서 국가 공무에 개인 이메일을 사용한 힐러리의 특권 의식은 청빈한 확신 정치인 샌더스의 매력을 가중시키고 있다.
공화 민주 양당 지도부는 시간이 이들 돌풍을 잠재워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양쪽 다 마음이 편한 상황은 아니다. 트럼프 열기가 장시간 지속돼 당내 분란으로 에너지가 소진되는 것도 문제지만 경선에서 진 트럼프가 이에 불복하고 독자 출마를 강행할 경우 공화당의 패배는 확실하다. 트럼프는 공화당 후보 중 유일하게 독자 출마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도 골칫거리는 있다. 현재 연방 법무부가 힐러리 이메일 서버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데 여기서 치명적인 잘못이 발견될 경우 샌더스로는 필패고 대타가 없는 상태다. 조 바이든 부통령의 출마설이 모락모락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싱거울 것 같던 2016년 대선이 재미있게 돼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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