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언제 태어나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 분명해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어 보인다. 인간은 산모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며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은 언제부터 시작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치 않다. 인간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 산모의 몸에서 태아의 형태로 자라나기 때문이다. 태어나기 직전 태아의 모습은 갓난아기와 거의 차이가 없으며 사실상 인간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반면 임신 직후 태아의 모체인 배아는 단 하나의 세포다. 이를 인간과 똑같이 취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연방 대법원도 이같은 사정을 고려해 1973년 역사적인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통해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면서도 임신 말기의 중절은 금지했다. 현재 법원이 인정하고 있는 낙태 가능 시점은 임신 후 24주 전까지다. 이 이후에는 태아가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인들의 견해는 찬반으로 양분돼 있다. 최근 실시된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5%가 낙태가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다고 답한 반면 45%는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10여년 동안 동성애자 결혼과 마약 합법화 등 다른 사회적 이슈는 이를 수용하는 쪽으로 대폭 기울었음에도 낙태에 관해서만은 찬성과 반대자 수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현재 임신 후 24주로 돼 있는 낙태 허용 기간을 20주로 줄이자는 주장에는 56%가 지지 의사를 표시했으며 10%는 이 기간을 더 줄이거나 아예 금지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인의 2/3가 낙태를 더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20주 단축론자들은 그 때부터 태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편다.
한 동안 잠잠하던 낙태 논쟁이 최근 다시 불붙고 있다. 낙태 반대론자가 미국내 최대 임신 및 성 보건 기구인 ‘Planned Parenthood’ 관계자가 태아의 장기 적출을 물건 다루듯 말하는 장면을 몰카로 찍어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 단체는 예산의 3%를 낙태 수술에 쓰고 있는데 이렇게 사산된 태아의 장기는 적출돼 연구용으로 쓰여진다. 이 때 장기 자체는 돈을 받지 않지만 운송 및 수수료 조로 돈을 청구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태아를 팔아 장기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비디오가 공개되면서 이 단체에 대한 연방 정부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공화당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 지원금을 낙태에 사용하는 것은 이미 금지돼 있다며 이를 구실로 미국인의 성교육과 성병 예방에 예산의 대부분을 쓰고 있는 이 단체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맞서고 있다.
태아는 잠재적 인간이지만 모체의 일부이기도 하다. 태아의 생명 보호와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라는 두 가치는 낙태라는 이슈에서 정면충돌하고 있으며 타협점을 찾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의 낙태 논쟁은 앞으로도 오래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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