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숙 ‘어느 여름 날’
전기가 나갔을 때
도시는 어둠 속에 잠기고
친구의 노란 아파트를 향해
우리는 북쪽으로 차를 몰았지
친구의 아파트에는 전기가 있어
작업을 할 수가 있었다네.
어두운 아파트로 다시 돌아와
당신은 아파 누워버렸고 나는
야심에 가득 넘쳐
촛불 곁에서 글을 썼었지
얇은 블루의 책들을.
마침 발전기를 가지고 있는 이웃이 있어
잠시 후 불을 좀 켤 수는 있었지
나는 개를 데리고 나가 볼일을 보이고
당신은 여전히 좀 아파했지.
지독히 가난했던 우리
늦은 오후, 현관에 앉아
진한 카푸치노 한 잔을
나눠 마시던 그때, 문득
도시는 환하게 불타올랐었지.
/ Eileen Myles(1949- ) ‘우리는 행복했네’ 전문 (임혜신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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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왜 모두들 행복을 찾아 죽어라 뛰는 것일까. 행복은 멋진 외부적 상황이 아니라 행복해 할 수 있는 감성이라는 내면의 문제일터인데 말이다. 촛불 아래서 글을 써도 행복하던 시절, 어둠이 오히려 영혼의 속 깊은 심지를 밝혀주던 그때를 회상하는 화자, 그는 지금도 카푸치노 한 잔이면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일까. 아마도 그렇지 않기에 이 시를 썼으리라. 행복은 작고 낮은 곳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시이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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