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인근에서 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은 이를 저지하던 한국 고속정 ‘참수리’호에 느닷없이총격을 가해 왔다. 한국 해군은 이에맞서 응사했으나 이 과정에서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당했으며 ‘참수리’호도 가라앉았다. 북한군은 13명이 전사하고 25명이 부상당한 채 도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국을 지키다 전사한 이들 여섯 용사들은 월드컵 열기에 묻혀 당시는 물론이고 그 후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이들이 죽은 다음날 김대중 대통령은 월드컵 결승전 참관 차 일본으로 떠났고 이들의 장례식장에는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도 국방장관도 참석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이들 유가족 중 일부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에 대한 냉대를 견디지 못하고 이민을 떠났겠는가.
이들에 대한 예우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조금 나아졌다. ‘서해교전’이라 부르던 이름부터 ‘제2 연평해전’으로 고치고 추모식을 정부 기념행사로 승격시켰으며 주관 부서도 제2함대 사령부에서 국가보훈처로 옮겼다.
한국 해군 함정 6척에 이들 사망자 이름이 모두 붙은 것도 이명박 때다.
요즘 한국에서는 영화 ‘연평해전’의 열기가 뜨겁다. 개봉 12일 만에 누적관객 300만을 돌파했는데 이는 올 들어 한국영화 중 세 번째다. 이 영화는평범한 한국 젊은이이던 이들이 남들이 월드컵 열기에 빠져 있던 2002년 6월 29일 어떻게 조국을 지키다 숨져갔는지를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대통령이 이들이 전사한 다음 날 일본으로 떠난 것도 논평 없이 TV 뉴스로만 짤막하게 내보냈다.
이 영화 관객의 70%가 보수 성향이 강한 중장년이나 노년층이 아니라20~30대라는 점도 특이하다. 아마도 같은 젊은이들의 애틋한 죽음이 이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모양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위 ‘진보’가 장악하고 있는 한국 영화 비평계는 이 영화에 대해 굳건한 침묵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흥행에 성공했지만 이 영화는 한때 제작비 부족으로 빛을 못 볼뻔 했다. 그러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하고 일부 출연자들의 ‘재능 기부’로 간신히 살아났다. 돈이 없으면 제작을 중단하고, 있으면 재개해 만드는데 7년이 걸렸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게된 데는 여야 두 국회의원의 공이 컸다. 연평 해전 전사상자 후원회로 인연을 맺은 새정치 민주연합 신기남 의원과 새누리당 이병석 의원은 크라우드 펀딩을 제안하고 해군 등 관계 부처의 협조를 요청하는 등 영화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라를 지키는 데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링컨은 1863년 남북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던 게티스버그에서 열린 전몰장병 장례식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면서 이들이못 다한 일을 다 하는 것이 우리가 할일이며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의 죽음을 결코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29일 열린 이들 추모식장에는 13년 만에 처음 국방장관이 참석했다.
그 동안 다른 국방장관들은 무슨 할일이 바빠 이들 용사들의 넋을 기리는자리에 코빼기도 안 비쳤는지 모를 일이다. 이제라도 참석했다니 다행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잊는 국민과 국가는 세상에 존재할 자격이 없다. 조국을 위해 산화한 이들 영령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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