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 ‘라이브’
책을 당기자 활자가 흐릿해진다. 깜짝 놀라
몸을 물리자 불을 켠 듯 선명해진다. 노안이다!
세상이란, 너무 가까이 할 것이 못 된다는 세월의 충고.
깊숙이 들이민 몸뚱이를 늪에서 빼내어
멀리서 바라보아야 아름다워지는 나이가 된 것,
그 동안 너무 맣은 꿈들을 갉아먹었으니
이제부턴 밖으로 나돌던 생각을 태엽처럼 감아서
배꼽 밑에 고치를 틀어야 할 차례다.
이 산뜻한 충고를 어기고 돋보기 뒤에 웅크려
흐려진 눈을 밝힌들 세상이 새로워질 리 없으니
어둑눈과 가물귀로 울타리를 둘러,
흐린 세상의 아름다움을 맛보라는 얘기다.
몸뚱이 가장 깊은 곳에 웅크린 번데기가
울타리에 껍질을 벗어놓고 날아갈 때까지.
/ 정진명 (1960-) ‘흐린 세상의 아름다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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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뜩 찾아온 노안을 화자는 지혜롭게 받아들인다. 세상을 너무 가까지 보지 말고 멀찌감치 바라보라는 세월의 충고라고 푸는 것이다. 선명하고 분명한 것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조금 흐려지고 어두워진 풍경도 아름답다. 밖으로 나돌던 생각을 안으로 불러들여 생이 깊이와 넓이를 느긋이 가름해 볼 수 있다면, 그리하여 껍질을 벗어놓고 날아가는 나비처럼 가벼워질 수 있다면 늙어가는 것이 결코 서글픈 일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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