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미국에서는 인구 대이동이 있었다. 일자리를 잃은 많은 사람들이 사철 온화하고 일자리 많다는 남가주로 몰려들었다. ‘자가용’이 널리 보급되었던 시기인 만큼 자동차를 이용한 대이동이었다.
이 행렬에는 뉴햄프셔에 살던 형과 아우도 있었다. 형제는 처음 할리웃의 콜럼비아 영화사에 취직해 세트 제작하는 일을 했다. 몇년 일해 돈이 모이자 1937년 이들은 패사디나에 드라이브 인 식당을 열었다. 핫도그를 파는 조그만 식당이었다.
당시 남가주는 자동차로 인해 신종 도시문화가 생기던 때였다. 세계 최초로 모텔이 생기고, 드라이브 인 은행이 생겼다. 이어 등장한 것이 드라이브 인 식당. 자동차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하면 웨이트리스들이 음식을 날라다 주는 식당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뉴햄프셔 형제의 식당도 수입이 짭짤했다. 몇 년 돈을 모은 형제는 샌버나디노, E 스트릿에 있는 큰 건물을 사서 새로 식당을 열었다. ‘맥도널드 브라더스 버거 바 드라이브 인’이라는 긴 이름이었다. 패스트푸드 제국 ‘맥도널드’가 처음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들 리처드와 모리스 맥도널드 형제의 식당은 날로 번창했다. 인근의 고등학교 학생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형제는 샌버나디노 언덕에 테니스 코트와 수영장을 갖춘 대저택을 매입할 만큼 부자가 되었다.
돈을 벌만큼 벌자 형제는 드라이브 인 식당사업이 지겨워졌다. 무엇보다 조리사들이 툭하면 그만 두어서 사람 구하기가 어려웠다.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 조리사가 부족하자 서로 조리사를 빼가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10대 웨이트레스들 관리도 골치 아프고, 접시며 유리잔은 수시로 깨졌다. 형제는 뭔가 새로운 운영방식을 찾고 싶었다.
1948년 형제는 3월간 식당 문을 닫고 주방을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나이프와 스푼, 포크를 사용하는 메뉴는 모두 없애버리고 햄버거와 치즈버거만 남겼다. 접시와 유리잔을 없애고 종이 컵, 종이 접시, 종이 백으로 대체했다. 가장 혁신적인 시도는 조리사가 필요 없는 주방시스템. 조리과정을 세분해 직원들이 각각 한가지 일만 하게 훈련시켰다. 공장의 조립라인 시스템을 식당 주방에 도입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 결과 조리시간은 단축 되고 가격은 싸졌다. ‘패스트푸드’의 탄생이다.
패스트푸드는 할리웃, 청바지, 팝뮤직과 함께 미국의 상징으로 군림해왔다. 패스트푸드의 선두주자, 맥도널드의 매장은 전 세계에 3만6,000개점.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다.
절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제국이 위기를 맞고 있다. 매출이 날로 떨어져 심각한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바뀐 탓이다. 대량생산 되는 패스트푸드는 가고 건강에 좋은 슬로우 푸드가 대세이다. 맥도널드가 어떻게 위기를 타개해 나갈 지 각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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