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진정국면을 맞고 있다.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됐다. 치안유지를 위해 투입됐던 주 방위군도 철수를 시작했다. 비상사태는 여전히 발효 중이지만 볼티모어 시는 일상을 되찾고 있다.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볼티모어 폭동은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권주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간에 지난해 미주리 주 퍼거슨 폭동과 이미 상당한 충격파가 전해졌다고 보아야 한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분석이다.
대통령 선거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나. 여당과 야당, 민주와 공화, 양당 후보들의 정책대결이다. 틀리지 않은 정의다. 그러나 또 다른 측면도 있다. 현직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대한 국민투표라는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대권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는 현직 대통령의 성적표, 혹은 공적(performance)이다. 그 중 가장 피부에 닿는 것은 경제다. 전쟁과 평화 문제도 여기에 해당된다. 외교도 공적 평가의 한 주요 잣대다.
거기에 하나 더. ‘얼마만큼 공중질서가 잘 유지 되었는가’다. 폭동 등으로 국내적 안녕이 위협 받을 때 대통령의 성적표에는 감점이 주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드러난 사실이다.
인종 폭동 등 대규모 사회적 소요 사태가 대통령 선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는 1888년 대선 이후 모두 8 차례에 이른다.
그로버 클리블랜드와 벤자민 해리슨이 맞붙은 1888년 대선 때 시카고에서 60여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노동자 시위가 발생했다. 이 시위는 폭동으로 번지면서 상당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해 대선에서 현직인 클리블랜드가 패배했다.
1892년, 1896년 대선 때도 유혈사태로 이어진 대대적 노동자 시위가 있었다. 대선 결과는 모두 현직의 패배였다. 1920년과 1932년 대선도 모두 거대한 사회적 소요 가운데 치러졌고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1965년 LA의 흑인 빈민가 와츠에서 폭동이 발생했다. 그 불길은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38개 도시로 번졌다. 그 다음해에도 폭동의 불길은 계속 타올라 뉴와크에서 6명이, 디트로이트에서는 40명이 죽는 참사로 이어졌다.
그리고 맞은 게 1968년 대선이다. 그 해 선거에서 린든 존슨은 아예 재선출마를 포기했다.
가장 최근의 상황은 1992년 대선이다. 이 해도 LA에서 폭동이 일어난 해로, 걸프전의 영웅이었던 조지 부시(아버지) 대통령이 당시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빌 클린턴에게 패배했다.
예외는 1972년 대선이다. 월남전 반대의 대대적인 유혈 시위에도 불구하고 리처드 닉슨은 재임에 성공했다.
퍼거슨에서의 유혈사태. 그리고 또 다시 발생한 볼티모어 흑인 폭동. 이는 그러면 201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까. 아직은 두고 볼일 같다. 그러나 역사의 교훈대로라면 민주당 대권주자에게는 아무래도 정치적 악재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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