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서 찾아 온 미협 회원들... 세월을 넘어선 교류의 장
▶ 진지한 작품설명·웃음 넘쳐
박혜숙(왼쪽 다섯 번째)의 생일축하 노래를 하고 있는 화우들.
박혜숙의 ‘작업의 과정’ 전시장을 동료 작가들이 돌아보고 있다.
■ 박혜숙 작품전 ‘작업의 과정’ 오프닝 가 봤더니…
미술가협회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보면 80년대 한인타운 문화계의 분위기가 거의 원형 그대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 때 그 사람들이 아직도 만나고 있고, 비슷한 관계, 비슷한 이야기, 비슷한 삶의 모습들이 어우러지는 약간 빛바랜 낭만 같은 것이 있다. 가끔 가라오케를 틀어놓고 노래도 하고 술도 마시고 흥이 오르면 춤도 추는데, 80년대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바로 그 흥취다. 시간이 정지한 듯 정겹게 느껴지는 사람들. 변한 것이 있다면 약간의 주름살과 흰머리들일 것이다.
지난 주말 샌버나디노의 ‘예술사랑’에서 있었던 박혜숙 작품전 ‘작업의 과정’ 오프닝이 다소 감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동안 함께 흐른 세월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박혜숙이 언제적 박혜숙이던가, 또 그를 만나고 참견하러 온 사람들이 언제적부터의 화우들이던가. 삼십몇년 세월을 지나서 그녀의 ‘환갑’을 축하해 주려 한 시간 넘게들 달려온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생일케익에 어울리지 않는 소주잔과 와인잔을 기울이며 삼삼오오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흰소리들을 하고 있었다.
박혜숙도 평소와는 조금 다른 얼굴이었다. 그가 얌전한 검은 투피스를 입은 모습도 생전 처음 보았는데, ‘작업의 과정’을 설명하는 그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감동이 서렸다고 느껴졌다. 기와 혼이 작품에 중요한 요소인 박혜숙은 샌버나디노의 산자락에서 훨씬 자유로워진 붓과 물감으로 캔버스를 채워나가는 작품 수십점을 전시장에 그대로 깔아놓고 세워놓았다. 형태가 중요하지 않은 그의 그림은 강렬한 색깔과 거친 붓질의 전투장과도 같아서, 노랑은 그녀의 사회적인 자아, 블루는 그녀의 정돈되고 안정된 지성, 주홍빨강은 그녀의 날것인 감성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날을 위해 ‘예술사랑’의 주인 부부는 많은 것을 준비했다. 화통 삶아먹은 소리로 말하고 웃는 김성일씨와 모든 먹을거리와 뒤치다꺼리를 조용하게 담당하는 김홍비씨의 노고는 미협 사람들이 누구나 알고 있는, 지금 세상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 역시 80년대 인심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두 손으로 못 만드는 것이 없는 조각가 김성일씨는 이날 몰려올 손님들을 위해 몇날 며칠 뚝딱거려 뒷마당에 멋진 오락실용 집을 한 채 지었고, 김홍비씨는 키우던 닭을 여러 마리 잡아 큰 가마솥에서 푹푹 고운 닭개장과 지난해에 담근 총각김치에 각종 다과를 끝도 없이 내왔다. 그러고도 모자라 별 보며 일어서는 사람들을 붙잡고 “방 많으니 자고 가라”고 우기고 떼쓰는 것이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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