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차게 시작했던 새 학기는 어느덧 중반을 넘겼고 중간고사가 끝나는 이때쯤부터 슬슬 늘어지는 타이밍이 된다. 날씨가 풀리면서 긴장도 풀리는지 일주일의 봄방학이 끝나면 학생들의 지각과 결석이 눈에 띠게 늘어나고, 시험 점수와 과제물 제출 속도는 그에 반비례한다. 마감에 맞춰 페이퍼를 내는 학생들 숫자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시험을 못 보거나 페이퍼를 제 때 못내는 학생들의 변명은 또 얼마나 각양각색인지… 아팠다, 집에 급한 일이 있었다, 차 사고가 났다, 이사를 가느라 너무 바빴다 등등… 내 학창시절에 등장했던 레퍼토리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을 보면 학생들이 생각해 낼 수 있는 스토리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
오피스로 찾아와 징징거리는 학생들에게 마음이 약해져 자꾸 예외를 주고 마감을 연장하다가도 묵묵히 착실하게 자기 일을 하는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인지 복잡한 마음이 든다(작년에 담낭 떼는 수술을 했는데, 공식적으로 쓸개 없는 사람이 되니 더 우유부단해진 것 같다). 엄격한 선생이기 보다는 칭찬과 격려로 학생들의 배움을 진작시키겠다는 나의 거창한 다짐이 흔들리는 것도 이맘때인 듯하다.
이해는 간다. 대학원 때 나도 페이퍼와 시험이 끊임없이 이어져 간신히 하나를 끝내도 그 다음 과제를 위한 준비 때문에 쉴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몸이 아파서 한 수업이라도 빠질라치면 혼자 공부해야 하는 시간이 두세 배가 들어가는 나날이었다. 때문에 노력과 시간이 얼마가 들어갔든 성적이 좋지 않으면 혹시 만회할 방법이 있을까 교수님 방을 찾았었다.
재미있는 것은 오히려 선생의 입장이 되어보니 나의 시험관도 달라졌다는 것이다. 적어도 일이주일에 한번 씩은 학생들의 페이퍼나 시험지를 채점하느라 주말을 다 보내는데, 내가 그렇게 끔찍이 싫어하던 시험이지만 제대로만 만들면 학생의 능력을 가늠하는데 꽤 괜찮은 척도가 된다는 것이다. 가르치기 시작한지 몇 년 되니 지금은 시험 답안지나 페이퍼를 보면 이 학생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보다 훨씬 험난한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학생들에게 인정에 이끌려 편의를 한번 두번 봐주는 행위가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시험을 치르는 것 같다. 시험지를 앞에 두고 문제를 푸는 시험은 끝났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수많은 선택 앞에서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이고 어떤 것이 아닌 것인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인지, 어떤 것이 ‘정답’인지 매일매일 고심한다.
어쩌면 우리 삶 자체가 시험인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가 삶을 앞에 두고 정답을 찾으려 애를 쓰지만 어떻게 시험을 보고 어떤 성적을 내는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나의 학생들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 시험을 주는 이도 ? 그가 누구건 ? 우리가 어떤 시험 앞에서도 절대 실패하기를 바라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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