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클라크의 미래는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텍사스 플레인뷰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 때 이미 말썽을 일으켜 정학당한 후 자퇴하고 해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해군에 있으면서 전자공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4년간 복무한 후 제대한 그는 튤레인 대 야간 학부에 등록해 학점을 따 고교 졸업장 없이도 뉴올리언스대학에 입학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여기서 물리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딴 후 유타대에서 컴퓨터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 후 그는 UC 샌타 크루즈 교수를 거쳐 스탠포드 대 전기공학 교수로 일하며 여기서 학생들과 함께 만든 기술을 이용해 1982년 ‘실리콘 그래픽스’라는 회사를 차린다. 이 회사는 당시까지 원시적이던 컴퓨터 그래픽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요즘 영화에 사용되는 현란한 컴퓨터 그래픽의 원조는 ‘실리콘 그래픽스’라고 보면 된다.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자기가 만든 회사를 그만 두고 나와 ‘넷스케이프’라는 회사를 차린다. 90년대 인터넷 사용이 확대되면서 월드와이드웹 망이 구축됐지만 일반인은 이를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누구나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웹 브라우저의 등장이 절실히 요구됐다. ‘넷스케이프’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90년대 중반 넷스케이프가 출현했을 때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당시 웹 브라우저 시장의 90%을 넷스케이프가 장악하고 있었으니까 처음 인터넷을 접한 사람은 거의 넷스케이프를 통해서 했다고 보면 된다. 넷스케이프의 등장은 또 인터넷 붐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클라크는 이 회사에 500만 달러를 투자해 2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여기까지 클라크의 일생은 마이클 루이스가 쓴 ‘뉴, 뉴 싱’(The New, New Thing)이라는 책에 생생하게 나와 있다.
그러나 넷스케이프가 독점하고 있던 브라우저 시장은 마이크로소프트가 뛰어들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윈도우즈 운영 시스템으로 PC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체 개발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기 하면서 넷스케이프의 시장 점유율은 1%대로 떨어지며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한 때 90%의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며 떵떵거리던 익스플로러가 요즘 넷스케이프와 비슷한 운명을 맞고 있다. 애플의 선전과 컴퓨터의 무대 중심이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하면서 익스플로러 이용자가 급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익스플로러 이용자는 전체의 10%대로 추산된다.
더 이상의 몰락을 지켜볼 수 없다고 판단한 마이크로소프트사가 극약 처방을 내왔다. 앞으로 나올 윈도우즈 10 버전부터는 익스플로러를 끼어넣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 대신 현재 ‘프로젝트 스파르탄’이란 이름이 붙은 새 브라우저를 개발 중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하이텍 업계의 변화는 누구도 종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다. 과연 ‘스파르탄’이 옛 익스플로러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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