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5일 서울의 한 행사에 참석했다가 진보성향 문화단체로부터 흉기 피습을 당한 사건은 미주 한인들을 크게 놀라게 했다. 한국의 혈맹인 미국의 대사가 칼로 피습당해 피를 흘리는 모습은 한인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에서 낳은 아들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줄 만큼 한국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한국인의 친구가 되려고 노력해 온 외교관이다. 이런 그가 무자비한 공격을 받은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 방송들은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이 소식을 긴급 뉴스로 내 보냈다. 또 미국 정부도 “폭력행위를 강력 규탄한다”는 성명을 내는 등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몇 년 전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관을 대상으로 자행된 자살폭탄 테러로 자국 대사가 숨지는 참극을 경험했던 미국정부로서는 해외주재 외교관들의 안전과 관련한 트라우마가 없을 수 없다. 특히 피습당한 리퍼트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인 만큼 미국 언론과 정부가 이번 사건에 비상한 관심과 즉각적 우려를 나타낸 것은 당연하다.
범인은 ‘우리마당’이라는 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김기종이라는 사람으로 밝혀졌다. 사건 후 언론들이 보도하는 김씨의 과거행적들을 종합해 보면 그는 합리적인 판단 능력이 결여된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보인다. 왜 그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는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나겠지만 현재까지는 정신 나간 개인의 우발적 일탈 행위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데 사건 발생한 후 미국 정부가 보인 태도와 한국 내 보수 세력의 반응은 사뭇 대조적이다. 미국 정부는 “폭력행위를 규탄한다”는 입장을 내면서도 한국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지는 않았다. 또 ‘테러’라는 용어 대신 ‘공격’(assault) ‘폭력’(violence)이라는 표현을 써 우발적 사건으로 규정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한국의 보수 세력은 이번 사건을 정치적으로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테러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한다”며 마치 김씨 뒤에 거대한 세력이라도 있는 듯 분위기를 조성했다. 피해자인 미국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도 말이다.
두 나라 외교 당국은 이번 사건이 양국 관계를 해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논평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 입장일 뿐 미 대사 피습사건이 두 나라 관계에 미칠 여파는 불가피하다. 한국과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 그리고 최근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놓고 약간 어색해진 상황이었다. 그런 만큼 피습 사건에 경호상 책임과 도의적 책임이 있는 한국으로서는 입지가 약해질 수 있다.
외교적 여파 외에 이번 사건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부정적 여론이 커질 수도 있다. 대사가 피를 흘리며 병원으로 후송되는 과정이 TV를 통해 생생히 전달됐기 때문이다. 한국이 안전하지 않은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 줄 수도 있다. 미주 한인들은 이것을 가장 우려한다.
어떤 이유에서도 폭력이나 테러는 용납될 수 없다. 김 씨가 무슨 의도로 이런 어처구니없는 만행을 저질렀는지 철저히 규명해 그에 상응하는 죄 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한미 간의 쓸데없는 외교적 오해와 앙금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한국 정치권은 정치적 공방을 자제하고 차분히 수사를 지켜보기를 바란다. 한국인의 진정한 친구가 되고자 했던 리퍼트 대사의 조속한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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