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졸업을 몇 달 앞두고 들었던 영문학 수업을 떠올려본다. 16세기 에드먼드 스펜서의 작품 ‘The Faerie Queene’에는 Britomart이라는 이름의 여기사가 등장한다. 이야기 속 다른 기사들에게 존경을 받는 용맹한 인물로 묘사가 되지만, 그는 전형적인 영웅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그는 자신의 ‘순결/정조’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내적 갈등과 다른 인물들과 맞서며 여행을 다닌다. 단단하고 견고한 갑옷 속 여기사는 정신적으로 연약하며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탓에 끝없이 방황한다.
스펜서의 작품을 설명하던 교수님은 주인공이 자신의 임무(이 경우 ‘순결’을 지켜나가는 것)를 수행하며 느끼는 내적 갈등과 방황들이 결국엔 그를 진정한 인물로 성장하게 했으며 임무를 완성하는 것보다 그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 말씀하셨다.
작품에서는 라틴어인 ‘error’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현대에선 ‘실수’를 뜻하는 단어의 어원으로 본래는 ‘(길을) 헤매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주인공이 실수를 하며 ‘헤매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으며, 작가 스펜서는 또한 이러한 과정이 의미가 있는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400년이 넘게 오래된 16세기의 작품을 읽으며 오늘날 나의 모습과 내 친구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한시라도 빨리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과정은 얼마나 그 가치를 인정받을까.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또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방황할 시간을 누리지 못한 채 다른 사람들을 충족 시켜줄 수 있는 목표를 얼떨결에 정해버리고 만다.
조금이라도 경쟁자를 앞서가야 승자가 될 수 있는 대학입시라는 시합 속에서 흔히 방황하는 시기라고 불리는 사춘기는 그저 방해물일 뿐이고, 더 넓은 세상을 보며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싶어 하는 20대의 마음은 그저 ‘로망’일 뿐, 취업 경쟁에서 낙오자가 되고 싶지 않으면 한시라도 빨리 버려야 하는 장애물이다.
내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세월은 내가 입학해야 하는 학교와 입사해야 하는 회사에 맞춰 설계되고, 한 단계가 끝나면 곧바로 파도에 떠밀려 다음 단계를 허겁지겁 준비하며 늘 미래를 설계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것 같다.
오로지 지금 현재를 위한 현재를 살아갈 순 없는 것일까.
더 이상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의미 있는 방황이 아닌 현실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의 여유이며 낙오자가 되는 길인 것일까. 이러한 넋두리 또한 의미 없는 시간 낭비일 뿐일까.
400년이 넘은 스펜서의 작품 속 방황하는 주인공과 또 그의 시간들을 의미있게 바라보는 작가의 글을 보며 왠지 모를 위안과 또 부러움이 섞인 울적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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