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동부 사람들은 문화적 자존심이 강하다. 미국 역사가 처음 시작된 곳도 동부고 유명 대학들도 대부분 동부에 있으며 음악, 미술, 출판 등 문화적 활동도 동부에서 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동부의 중심은 아직까지 뉴욕이다.
그러나 최근 음악에 관해서만은 상황이 약간 달라지고 있다. 필라델피아 등 동부의 일부 오케스트라가 재정난으로 문을 닫거나 단원들과의 분규로 홍역을 앓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LA 필하모닉은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긴 것은 1919년으로 비교적 오래 됐지만 별 평가를 받지 못했던 LA 필이 뜨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핀랜드계 에사 페카 살로넨이 지휘자로 오면서부터다. 그는 단골 레퍼토리인 고전 음악과 함께 전위적인 현대 음악을 소개하면서 LA 필을 미국에서 가장 창조적인 교향악단의 하나로 변모시켰다. 2000년에는 뉴욕 필 사무국장이던 데보라 보다가 LA 필 단장 직을 맡으면서 악단을 재정적으로 탄탄한 토대에 올려놨다.
그러나 LA 필이 세계적인 악단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베네수엘라 출신 구스타보 두다멜이 악장 직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는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킨 음악 프로그램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면서 독보적인 음악 세계를 창출해내고 있다.
2009년 타임은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의 하나’로 선정했고 2012년에는 ‘그라마폰 올해의 예술가’로 뽑혔으며 2013년에는 뮤지컬 아메리카로부터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됐다. ‘뉴요커’의 음악 평론가인 알렉스 로스는 LA 필을 “가장 창조적이며, 따라서 미국 최고의 오케스트라”라고 평가하고 있다.
LA 필이 이처럼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물론 두다멜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넉넉한 자금 덕이 크다. 지금 LA 필의 예산은 연 1억1,000만 달러로 미국 내 오케스트라 중 최대다. 그 이유는 보다 단장의 뛰어난 자금 동원력에다 남들이 갖고 있지 못한 자산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남가주의 명물 할리웃 보울이다.
할리웃 보울의 소유권은 LA카운티가 갖고 있지만 운영은 LA 필이 맡아 하며 이곳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연 5,000만 달러에 달한다. 그 대신 사용료로 연 250만 달러를 카운티에 지불하고 있다. 할리웃 보울은 LA 필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다. 대신 고마움의 표시로 할리웃 보울 정문에 제브 야로슬라브스키 전 카운티 수퍼바이저의 이름을 붙여줬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같은 뉴욕의 명물도 2,200만 달러의 적자를 견디다 못해 단원들 봉급을 깎을 정도로 허덕이는데 이같은 재정적 풍족함은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LA로 끌어들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주말에는 베토벤과 스트라빈스키가, 다음 주에는 두다멜의 말러가 디즈니 홀에서 청중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름에는 할리웃 보울, 봄가을에는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LA 필의 세계 정상급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남가주에 사는 기쁨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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