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다음 해에 한국의 친정에 갔다. 엄마가 “그래… 요리는 좀 늘었니?” 하셨는데 그때만 해도 다른 맞벌이 신혼부부들처럼 외식이 잦았기 때문에 요리할 기회가 별로 없던 나는 “아니요…” 하고 대답했다.
엄마는 화를 버럭 내시며 이제 한 사람의 아내가 되었는데 아직도 할 줄 아는 게 없으면 어쩌느냐고 혀를 차셨다.
두어 해 뒤 남편과 함께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자네, 집에서 밥은 먹고 다니나?”하고 물으시는 엄마 옆에서 우물쭈물하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남편이 냉큼 “김치찌개를 참 잘해요”하고 대답해 주었다.
사실이었다. 할 수 있는 요리의 가짓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김치찌개만큼은 항상 맛이 있었고 남편도 먹을 때마다 칭찬을 했으니 나름 객관적인 평가라 생각했다.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엄마의 평결을 기다렸다.
그러자 엄마는 표정 하나 안 바꾸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것도 요리냐?”
남편은 이를 악물고 웃음을 참더니 방안에 들어와서는 기어이 눈물까지 보이며 킬킬거리기 시작했다. “김치찌개는 요리도 아닌 거야…”
좀 억울했다. 엄마는 음식이 맛깔나다는 남도에서 태어나셨고, 종갓집 맏며느리로 평생을 살아오시면서 명절이나 제사 때 30-40명 분 음식을 거뜬히 해내시던, 한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가지고 계신 분이다. 나는 그 당시 맞벌이를 하는 3년차 주부였고!
하지만 결혼 전, 요리는 유전이라고, 엄마가 잘하면 딸은 당연히 잘하게 되어 있다는 한 친구의 근거 없는 말을 철썩 같이 믿고, 프라이팬만 들면 바로 셰프가 되어 팔보채 같은 음식을 척척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결혼과 동시에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였음을 깨달았다.
세상에는 시간과 노력이 더해져도 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나에게는 요리가 그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내가 힘들어 하는 부분은 기다리는 시간이다. 팬 위에서 재료가 익는 동안을 기다리지 못해 다른 것을 시작하다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것 하지 말고 이것만 바라보자니 좀이 쑤신다.
게다가 요리 과정의 필수인 설거지는 제대로 참을 인자 써가며 해야 하는 창의성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지루한 작업이라는 게 나의 변명이었다.
결혼한 지 10년, 아직도 궁중요리 같은 것은 엄두가 안 나지만 10년차 주부가 되니 이제 좀 먹을 만한 음식을 만들기는 하는 것 같다. 엄마에게 인정 못 받던 김치찌개는 수년간 나의 스테디 셀러로 자리를 지키며 남편과 친구들이 인정해주는 효자 요리가 되었고, 아이들도 내가 만들어 주는 팬케익이 할머니 것 다음으로 맛있다고 했으니 낙제는 면한 듯하다.
한번 먹어보고 맛을 “그려내는” 장금이는 평생 못되겠지만 하나씩 하나씩 도전하다 보면 뭐 그럴싸한 나만의 요리도 언젠가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먼 훗날 아이들이 커서 독립했을 때, “엄마가 해주는 떡볶이가 먹고 싶어요! 여기서 먹는 것은 그 맛이 아니야”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감히 나의 요리 인생이 성공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