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남한과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잇는 것이 ‘북한미술전’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진짜 이유”라는 조선미술협회의 신동훈(66·사진) 회장.
지난 14일 개막해 내달 3일까지 뉴저지 해켄색에 위치한 리버사이드 갤러리에서 열리는 ‘광복 70년-남북분단 70’이란 제목의 ‘북한 미술전’이 바로 신 회장이 기획한 전시회다.
1980년대 후반 워싱턴 DC에서 북한미술 전문화랑 ‘새스코 갤러리’의 문을 연 뒤 2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북한미술 전파를 위해 서울과 뉴욕, 워싱턴 DC를 오가며 십여 차례 이상 전시회를 개최한 신 회장은 올해도 북한의 최고 거장으로 이름 높은 선우영, 정창모, 탁효연 화백 등이 작품을 전시회에 내걸었다.
신 회장이 북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거친 이민생활에 지쳐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해보자’는 마음을 먹고 난 뒤였다. 대한민국 육군 병장으로 36개월을 복무하며 월남전에 참전한 뒤 7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신 회장은 자동차 수리공으로 시작해 워싱턴 DC에서 작은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며 가계를 꾸려나갔다.
"흑인 동네에서 장사를 했는데 권총강도를 3번이나 만났어요. 당시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할 때였는데 기왕지사 평소에 관심이 많았던 미술 관련 일을 해보자는 생각에 화랑을 시작했지요."
신 회장의 화랑이 처음부터 북한 미술품을 전시했던 것은 아니었다. 신 회장은 "사실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탓에 쟁쟁한 화랑들과 경쟁하며 한국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문득 희소성이 뛰어난 북한 미술에 눈을 돌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미국 시민권자인 탓에 북한 접근이 가능했던 신 회장은 일단 중국을 오가며 흘러나오는 북한 미술품을 뒤지며 안목을 키우는 동시에 북측 인사들과도 인맥을 쌓았다.
처음에 신 회장을 의심하던 북한 측도 그의 순수한 의도에 설득돼 북한 미술인들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만수대창작사’와 ‘조선미술박물관’의 문을 열어 줬다.
신 회장은 "작가들의 창작정신이 투영된 순수한 예술세계에 정치와 이념이 개입되는 사실이 안타까웠다"며 "때론 오해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보다 많은 이들에게 가려져있던 북한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의 오랜 발걸음은 이제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예술계와 평단에서도 가치 있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 회장은 "북한의 작가들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작업하며 개인과 사회의 갈등과 고뇌를 작품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며 "이를 순수한 마음으로 널리 알리다 보면 언젠가는 남과 북이 서로 공감하는 날이 올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고 말했다. <천지훈 기자> A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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