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을’의 고단한 삶이 주목받는 시기이다. 잔인할 정도로 고달픈 직장인의 삶을 그린 드라마 ‘미생’이 많은 직장인들의 공감을 바탕으로 인기를 끌었고, 땅콩회항이니 백화점 주차장 사건이니 비합리적인 소위 ‘갑질’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던 것을 보면, 밥 벌어 먹고 사는 일이 모두에게 결코 녹록치 않은가보다. 통찰력 훌륭한 소설가 김훈씨는 일찍이 2007년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에세이집 제목을 통해 이 “입 달린 자라면 피할 수 없는 고난”을 짚은 바 있다.
약 한달 가량의 길다면 긴 겨울방학이 있었고, 주위의 친구나 지인들은 아직도 개강하지 않았냐며 내심 여유가 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입 달린 자라 피할 수 없는 그 고난은 사실 방학이든 방학이 아니든 계속 되었다.
미국에서 많은 학술연구의 지원을 담당하는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은 올해 연구 지원 규모를 줄인다지만, 그렇다 해도 연구자들은 열심히 노력해야 하므로 방학 동안 된다는 약속도 없는 세 개의 연구제안서와 다른 연구 논문 집필로 정신이 없었고, 이제 다시 봄학기는 시작되었다.
밥벌이가 지겨워지고 고단해지면 기억나는 택시 운전기사가 한분 있다. 한국의 부모님 댁은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 끝에 위치하고 있다. 늦은 밤 귀가 길에는 종종 택시를 이용하게 되는데, 워낙에 경사가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 양쪽으로 주차까지 되어 있어 택시 기사의 눈치를 보게 되곤 한다. 손님이 갑이라지만 갑질은 커녕 기사에게 사과 아닌 사과와 부탁(?)을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작년 여름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기사님, 여기 경사가 급한데 죄송하지만 좀 올라가주세요” 라는 말을 하자 그 기사의 반응은 신선했다. “내가 택시기사인데 이 정도쯤은 당연히 해야죠.”내가 탔던 수많은 택시기사들 중 급경사 운전을 귀찮아하지 않고 선선히 받아들임으로써 감동을 준 유일한 분이었다. 사람이 무슨 일이든 밥벌이를 하려면 그 정도의 프로의식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고, 그런 자세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세상이 보다 긍정적으로 움직이는데 기여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분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정신적, 육체적 노동의 고단함과 지겨움은 밥벌이의 목적이 단순히 개인적인 이유에 머무를 때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특히 소위 말하는 갑질에라도 맞닥뜨리면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하지만, 그 반복되는 노동의 고단함과 지겨움이 사실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배의 과적을 검사해야 하는 검사관이, 혹은 배를 책임져야 하는 선장과 선원이 매일 하는 고단한 노동과 관행들에 대해 개인적인 밥벌이 이상의 의미를 의식했다면 지난해 4월 그 어리고 순수한 영혼들을 차디찬 바다에 한꺼번에 떠나보내고 전 국민이 우는 일은 어쩌면 피하거나 덜 심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밥벌이 이상의 그 의미를 잊지 않고 싶어, 대한항공 사무장은 다시 사무장으로 복귀하는 험난함을 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멋진 택시기사의 말을 본받아 “내가 연구하는 사람인데 이 정도쯤은 당연히 해야죠” 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고단함은 내게도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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