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에 한국에서 자란 아이치고 나는 꽤 오랫동안 산타의 존재를 믿었었다. 어릴 적 나에게 가장 큰 명절은 크리스마스였고, 그 중심에는 선물을 잔뜩 들고 다니시는 산타 할아버지가 있었다. 아기 예수에게는 죄송하지만, 12월25일 아침 머리맡에서 발견하는 선물을 빼면 크리스마스는 큰 의미가 없었다.
24일 저녁이면 기대에 부풀은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알게 될 그 선물이 무엇일지 매우 궁금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그 선물을 산타 할아버지도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라는 비밀스러운 소망은 늘 적중했고, 그 설렘과 환희만으로도 크리스마스 아침은 넘치도록 풍족했다.
매년 산타는 왔다 가셨고 늘 선물을 놓고 가셨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산타가 선물과 함께 놓고 간 카드의 글씨체가 낯익다는 생각은 가끔 했었다. 동네 친구들도 산타는 다 거짓말이라며 너희 부모님이 선물한 거라고 우겨댔지만, 우리 부모님의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이야기 하는 친구들은 “착한 일을 많이 하지 않아서” 선물을 못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동생과 몇 번 싸우기는 했지만 역시 나는 착했어…하며 안도하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일년 내내 대충 살다가도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내가 동생을 때린 적은 없는지, 울지는 않았는지, 그 분은 우는 아이들을 싫어하므로, 돌아보며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지켜졌던 산타의 비밀은 어이없는 곳에서 밝혀졌다. 당시 나는 6학년이었고 유치원 다니는 막내 동생의 성탄절 공연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을 방문하신 산타 할아버지가 같은 동네 살던 아저씨라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엄마, 나 저 산타 할아버지 알아”하고 말을 했을 뿐인데 엄마는 이제 내가 다 커서 산타의 존재를 알아버렸구나 생각을 하신 나머지 멋쩍은 얼굴로 모든 사실을 다 털어 놓고 말았던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다니... 진실을 받아드리는 것은 언제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이제껏 비밀스러운 공감대를 유지하며 내 마음에 딱 맞는 선물을 놔두고 간 사람이 산타가 아닌 부모님이었다는 사실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산타클로스가 없어진 크리스마스는 당장 정월 대보름이니 단오니 하는 명절과 같은 급으로 떨어졌고 한동안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크리스마스는 이제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이 날 태어난 주인공을 기억하고, 일년간 고마웠던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이 되었다. 연말이라 한껏 분주하고 덩달아 들뜨기도 하면서 말이다.
엊그제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같이 하면서 큰 아이가 물었다. “엄마 나는 산타클로스가 게임기를 선물해주면 좋겠어. 나 올해 착한 일 많이 했으니까 주시겠지?”아이는 일곱 살. 아직은 충분히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엄, 산타할아버지가 꼭 그거 선물 해주실 거야...”
행복을 주는 산타가 되기 위해 돈을 좀 더 많이 벌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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