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짧은 시간이라도 혼자 있다 누군가 함께 하게 될 때면, 내가 소리 내어 말할 때 그 말을 듣고 대답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새삼 참 감사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더욱이 작고 사소한 말에도 민감하게 귀기울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상 든든한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라 치부했던 많은 일들이 실은 전혀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해주는 고마운 ‘적막’이다.
굳이 함께 있어줄 사람을 찾지 않아도, 항상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세상엔 노력해서 쟁취하기보다 뜻하고 계획하지 않게 주어지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수록 더욱 진지한 감사를 시작하게 되는 것 같다.
또 원하지 않아도 굳이 긴 휴가가 허락되는 이러한 계절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은 있을지언정, 누구와 함께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또한 누군가 설정해둔 그 나름의 ‘의미 있는 관계’라는 바운더리 안에 자신이 있다는 확신이 주는 안정감은 또 얼마나 큰지. ‘감사’라는 단어를 수시로 만나게 되는 이 계절에 새록새록 되새기게 되는 따뜻한 감정들이다.
최근 한 친한 친구가 요리를 해주었다. 함께 장을 보면서 서로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재료들을 고르는 모습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작은 의구심이 들었다. ‘저 재료들을 한 냄비에 넣어 과연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그렇게 재료구입을 마치고 친구가 요리를 시작했다. 그러고는 ‘세상 어느 요리책에도 등장하지 않는 요리’라고 소개하며, 자신은 그냥 ‘마법 수프’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된 요리는 약 한 시간 동안 이어졌다. 정성스런 칼질소리와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들으며 점차 방안으로 퍼지는 부드러운 냄새로 먼저 마법 수프를 만났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거부감은 전혀 들지 않는 신선함, 점차 커지는 기대감을 가지고 완성된 마법 수프를 맛보았다.
미지의 무언가를 처음으로 대면하는 대부분의 첫 경험이 그렇듯, 먼저 작게 한 숟가락을 떠 보았다. 거창한 서술이 필요 없는, 참으로 사소한 사건이지만, 맛을 보는 순간에는 ‘설렘, 호기심, 두려움’ 등 ‘처음’과 잘 어울리는 단어의 감정들이 크고 작게 다가왔다.
친구의 마법 수프는 참 달콤하고 맛있었다. 친구에게는 ‘의외’라며 놀리듯 감사를 표하긴 했지만, 내심 미처 알지 못했던 익숙한 식재료들의 익숙하지 않은 사용법과 맛에 적잖게 놀랐다.
돌이켜보니, 이 친구와의 만남과 우정도 그런 것 같았다. 정반대라고 해도 좋을 성향과 성격의 사람들이 만나 오해와 불편함의 긴 터널을 함께 지난 후, 이젠 부족함도 넘침도 없이 사소하게 작은 하나까지 아주 잘 어우러지는 한 그릇의 훌륭한 요리로 완성되었으니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마법’이 아닐까.
한국의 한 역사학자는 결국 ‘희망’이라고 불리게 된 많은 것들이 실제 이질적이고 상이한 것들의 충돌 혹은 만남을 통해 시작되어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그 예로 동양과 서양의 교류가 시작된 후 발생한 수많은 긍정적 변화들을 언급했다.
우린 끊임없이 다름을 넘어, 심지어 자신과 충돌된다고까지 여기게끔 만드는 많은 관계와 그에서 파생된 다양한 사건들을 겪는다. 그리고 결국 그 모두가 마치 친구의 마법 수프와 같이 서로에게서 분리될 수 없는 거대한 하나의 역사가 된다. 그 맛을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완성되었다면, 그냥 일단 작게 한 숟가락을 떠 맛을 보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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