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세의 미국 생활은 사실 ‘미국’ 생활이 아니다.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몸만 미국에 살뿐 문화나 의식은 여전히 한국에 머물러 있다. 먹는 음식도, 같이 어울려 지내는 사람들도, 참석하는 교회도, 많은 경우 직장도 ‘한국’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1세들이 일반 미국인들과 접촉하며 미국의 문화와 정서를 피부로 느끼는 좋은 ‘창구’가 바로 자녀들이다. 자녀가 친구 집에 놀러가고, 그 친구가 집으로 놀러오고 … 하는 과정에 자연스럽게 그 부모들과 알게 되고 서로 왕래하면서 진짜 미국의 삶을 접하게 된다.
특히 자녀의 친구 그룹이 몇 년씩 지속되며 그 가족들까지 모두 가까워지는 경우가 있는 데 대표적인 예가 보이스카웃이나 걸스카웃 활동이다. 매주 모임, 주말 나들이, 캠핑여행, 기금모금 등 행사에 어른들이 함께 참여하고 때때로 서로 교통편을 제공하다 보면 부모들끼리도 친구가 되곤 한다.
그중에서도 모두가 똘똘 뭉쳐 하나가 되는 기회 중 하나가 걸스카웃의 연례 쿠키 판매행사. 회원들뿐 아니라 그 부모들까지 발 벗고 나서면서 한인직장들에도 때 아닌 쿠키 풍년이 찾아든다. 누군가 쿠키 예약 명부를 돌리면 직장 동료들은 성의껏 한두 박스씩 사주고, 주문한 쿠키가 도착하면 같이 나눠 먹는 것이 한인 직장에서도 친숙한 풍경이 되었다. 덕분에 한인 1세들도 나름대로 걸스카웃 쿠키와 관련한 추억들이 있다. 쿠키를 팔았거나 쿠키를 사 주었거나 그도 아니면 쿠키를 얻어먹은 추억이다.
미국문화의 아이콘이 된 걸스카웃 쿠키는 소녀들이 주도하는 비즈니스로 세계 최대 규모이다. 매년 행사 때마다 미국 걸스카웃은 2억 상자를 팔아 7억~8억달러의 수익을 올린다. 비영리기구 기금모금 아이디어로 이만큼 성공한 예가 드물다. 쿠키의 역사는 근 100년이 된다. 1912년 3월 줄리엣 고든 로 여사가 조지아, 사바나에서 18명의 소녀들을 모아 걸스카웃을 창단한 후 미전역으로 걸스카웃 운동이 확산되던 중이었다. 1917년 오클라호마, 머스코지의 걸스카웃이 고등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색다른 행사를 했다. 쿠키를 직접 구워 판매하는 행사였다.
이 행사가 인기를 끌며 각 지역 걸스카웃들로 파급되자 1922년 7월 걸스카웃 잡지인 ‘아메리칸 걸’에 쿠키 만드는 법이 소개되었다. 시카고 지역 디렉터인 플로란스 닐이 설탕 쿠키 만드는 법과 아울러 12개들이 6~7박스 만드는 데 드는 재료비는 26~36센트, 이를 박스당 25~30센트에 팔면 적당하다는 조언을 실었다.
이후 걸스카웃 소녀가 있는 집마다 엄마와 딸이 쿠키를 굽고 소녀들이 가가호호 방문하며 쿠키를 파는 것이 미국의 한 풍속도가 되었다. 쿠키의 인기가 높아지고 주문량이 많아지자 걸스카웃 본부는 1936년부터 제과회사와 계약을 맺어 대량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이 손잡고 쿠키를 팔던 추억이 이제 사라지게 되었다. 걸스카웃이 쿠키판매를 온라인으로 한다는 발표를 했다. 전화 앱이나 개인 웹페이지를 통해 판매하고 대금을 받는 시스템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거래되는 시대에 자연스런 변화이기는 하지만 또 하나의 아날로그 추억이 사라지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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