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대표작 ‘국가론’에 보면 ‘가이지스의 반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리디아의 목동이던 가이지스는 어느 날 동굴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시체가 놓여 있고 그 시체에는 반지가 끼어져 있었다. 반지를 빼내 손에 끼자 가이지스의 몸은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런 힘을 얻게 된 가이지스가 처음 한 일은 무엇일까. 왕궁으로 들어가 왕을 죽이고 왕비를 차지한 것이다.
인간이 도덕을 지키는 것은 주위의 눈이 있기 때문이며 이를 무시해도 좋을 때는 얼마든지 무시한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우려해온 바다. 20세기 최대의 팬터지물로 평가받는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도 따지고 보면 ‘가이지스 전설’의 현대판에 불과하다. 손에 끼면 낀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마법의 반지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끝내는 그를 괴물로 만든다.
미국 코미디계의 전설로 군림해온 빌 코스비가 요즘 궁지에 몰리고 있다. 그가 60년대 말부터 수많은 여성을 성폭행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10대 배우 지망생이었던 시절 코스비가 약을 먹이고 강간했다는 바바라 보우먼의 워싱턴포스트 기고로 촉발된 이번 스캔들은 같은 일을 당했다는 여자가 쏟아져 나오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논란이 확대일로를 걷자 NBC와 넷플릭스는 예정됐던 그의 쇼 방영을 취소했다.
코스비 쪽은 물론 이를 모두 부인하고 있지만 이 여성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공소 시효도 끝난 옛날 일을 개인적인 수치를 무릅쓰고 이처럼 자세히 폭로할 리 없다. 이들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코스비의 행동은 비슷한 패턴의 반복이다. 젊은 연예계 지망생을 돌봐주는 척 하다 때가 무르익으면 방으로 불러 약을 먹인 후 성추행하거나 폭행한다.
지난주에는 오랫동안 그의 ‘해결사’ 역할을 해온 프랭크 스카티가 자신이 코스비가 건드린 여인들에게 돈을 주고 입을 막는 일을 해왔음을 시인했다. NBC 건물 관리인이던 스카티는 많을 때는 한 달에 2,000달러씩 이들 여인에게 전달했으며 돈 세탁까지 했음을 실토했다. 그는 “그가 이 여자들과 성관계를 맺지 않았다면 왜 돈을 보내줬겠는가”고 반문했다.
이 소식을 들은 코스비팬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점잖고 현명하며인자한 아버지인 코스비 이미지와 상습 강간범이란 죄명이 너무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그토록 많은 여성들이 당했다면 왜 좀 더 일찍 경찰에 고발하지 않았는가 반문하지만 당시 코스비는 연예계의 신이었고 여성들은 이름 없는 약자였다. 성추행에 대한 인식도 지금과는 달랐다.
피해 여성들의 잇단 폭로에도 불구하고 코스비는 끝내 사실을 시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인정하는 순간 자신은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지는데다 무엇보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를 비웃는 동영상이 전염병처럼 퍼지면서 이미 코스비 이미지는 회복 불가능의 타격을 입었다.
추측컨대 코스비도 처음부터 여성들은 상습 성추행할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자신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자 ‘가이지스의 반지’를 낀 듯한 착각에 빠졌을 것이다. 권력이 타락시키는 것은 정치인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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