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와 비슷하게 들린다. ‘내재적 접근론’이라고 했던가. 그 용어를 말하는 거다.
송두율이란 사람이 이 용어를 들고 나와 한 때 꽤나 회자됐다. 자신은 이념적으로 좌도 아니고 우도 아니라고 했다. 일종의 양심세력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북한을 내재적 접근론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딴은…’ - 적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지나치게 단순화시켰다. 흑과 백의 논리로만 북한을 단죄한다. 그 논리가 깊이가 없다. 깊은 고민의 흔적도 없다. 그것이 한국의 일부 우파가 보인 북한 관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송두율이 들고 나온 ‘북한을 북한 입장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내재적 접근론은 꽤나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때문에 좌파는 물론이고 남북분단 문제에 있어 중도의 양심세력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한 때 그 주장은 상당한 공감을 샀다.
군사정권 시절 박해를 받다가 독일로 건너가 사회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남북분단 문제에 대해서는 경계인을 자처했다. 그런 그였으므로 그 주장은 더욱 신선하게 들렸던 것이다. 북한 노동당 서열 23위라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송두율의 순수성, 중립성에는 금이 갔지만.
어찌됐든 상당히 사고의 폭이 넓고 논리도 정교해 보인다. 그 내재적 접근론에는 그러나 교묘한 함정이 숨어 있다.
북한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맞다. 옳은 접근법이다. 그런데 어느 편이 북한의 입장이란 말인가. 김일성에서 정일, 정은으로 이어지는 수령절대주의 김씨 왕조의 입장인가, 아니면 압제 속에 기본인권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권마저 위협 받는 절대 다수의 북한주민의 입장인가.
민주주의의 기본대상인 주민의 입장은 배제됐다. 수령절대주의, 그 체제의 입장만 옹호한 것이다.
그러니까 내재적 접근론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독재나 폭압적 정권일지라도 합리화되지 않는 게 없다. 수많은 주민을 굶겨죽이면서 체제 영속에, 영달을 꾀하는 북한권력도 그래서 합리화 되는 것이다.
10년이 넘었다. 북한인권법 제정을 둘러싸고 대한민국 국회가 미적거린 지가. 그 10년 동안 유엔은 10차례나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했다. 지난주에는 북한 인권참상의 책임을 물어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한 결의안이 압도적 다수로 통과됐다.
그런데 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은 북한 인권법 앞에만 서면 그토록 한 없이 작아지는 것일까. 말 그대로 실효성이 없고 남북관계 긴장을 진심으로 우려해서인가.
그보다는 만연한 ‘내재적 접근론’ 강박증세 때문은 아닐까. 압제 속에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은 안 보인다. 보이느니 김정은으로 상징되는 북한 권력뿐이다.
그게 상당수, 그러니까 절반에 가까운 대한민국 선량들의 눈에 보이는 북한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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