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품을 한 번도 떠나 본적이 없는, 30대 중반의 동갑내기 친구가 처음으로 집 떠나 미국 유학을 왔다. 업무능력도 영어실력도 뛰어난 친구라 직장에서 여직원임에도 불구하고 발탁해서 MBA 유학을 지원해 준 경우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꽤 글로벌한 회사인데 여직원 지원은 처음이라니 사실 좀 놀랍긴 하다.
원래 완벽주의자인 친구는 그렇게 지원받고 온 만큼 더 더욱 학교에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고, 항상 잘 해오던 터라 스스로 세워 둔 기대치도 높은 것 같았다.
그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3개월 만이었다. 고작 3개월 미국 땅에 살았는데 그 동안 겪은 갖가지 일들과 그로 인한 심리적 어려움 때문에, 사람이 패닉 상태였다. 사람이 패닉 상태에 놓이면, 편하게 이야기하는 대상에게도 횡설수설, 상황을 설명함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들을 빼먹는 등 인지과정 상에서 치밀성을 잃는다.
길다면 긴 그의 3개월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유학 초기의 외로움과 영어에 대한 부담감, 한국과 미국 친구들 그 어느 쪽도 만만치 않은 인간관계의 고충등이다. 문화적/사회적 적응과정에서 나타나는 심리적/신체적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학업 부담으로 잠은 늘 부족하고 식사는 그저 끼니를 때우는 식이니 몸이 시달리고, 마음은 완벽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아 자괴감과 우울감이 가득한 상태...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자 혼자 유학 오면 힘들다더니..... 그 말이 뭔지 이제 알겠어” 라며, “너 어떻게 살았니? 그 동안?” 이라고 친구가 비로소 나를 이해하겠다는 듯한 말투로 미국생활 7년차인 내게 동의를 구한다.
그렇다. 30 넘어 유학 와서 이제 막 학위과정을 마친 나로서는 옛날 생각도 나고 안타깝기도 하다. 그렇다. 30대 싱글 여자가 유학 생활하려면 혼자 해결해야 할 일도 많고 심리적 실질적 도움이라도 좀 받으려 하면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기도 한다. 또 가끔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면 그 연기는 또 그대로 맵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보면 여자가 아니고, 싱글이 아니더라도,이 땅에서 자란 미국 친구들이라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생활하며 공부하느라 힘든 유학생들도 많고, 모국어로 공부하고 가족들도 곁에 있어 어려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 미국 친구들도 대학원 과정 동안 상담소에 줄기차게 다니며 자신의 마음을 돌봐야 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더 나아가 유학오지 않고 한국에서 남들이 좋다고 목을 매는 직장에 있으면서도 정치적/사회적 상황 때문에 처음 입사했을 때 가졌던 꿈과는 점점 멀어져 가는 친구도 있다.
어떤 조건의 특수성 때문에 특별히 누가 더 힘든 건 아닌 것 같다. 각자 자기의 삶에서 모두가 힘들다. 힘이 드는 부분이 서로 다를 뿐이다. 새로운 곳에서는 새롭기 때문에, 있던 곳에서는 새로운 것이 없기 때문에 모두 일정 부분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마음은 그러한 스트레스에 반응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다. 모두 힘들다. 그래서 요즘 ‘힐링’이 키워드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구나 각기 다른 부분에서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적어도 이 세상에서 나만 힘든 건 아니라는 일종의 ‘힐링 효과’를 조금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친구야, 누구나 힘들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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