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숙, 말순, 말자, 후남, 필남 … 중년 이상 연령층에게는 아련한 이름들이다. 50대나 60대 중에 말숙이나 말순 혹은 필남이라는 친구 한두 명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딸 많은 집의 셋째나 넷째 딸쯤 되면 으레 이름에 ‘말’자나 ‘남’자 붙곤 했다. ‘딸은 그만’이라는 의미로 마지막 ‘말’자가 쓰여 졌고, 다음 아기는 필히 남자아이이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후’자나 ‘필’자가 쓰여 졌다.
생각해보면 갓 태어난 아기에게 이렇게 가혹한 푸대접은 없다. “너 같은 아이는 필요 없으니 다음에 태어날 동생이나 제대로 태어나게 해다오”하는 의미이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극심했던 시절, 남아선호 사상이 만들어낸 비뚤어진 사회상의 한 단면이다.
성차별을 이름에까지 반영했으니 그런 사회, 그런 집안에서 딸들이 어떤 대접을 받았을 지는 짐작 가능하다. 밥상의 반찬에서부터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집안이 많았고, 딸들은 오빠나 남동생의 시중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가난한 집 딸들은 남자 형제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자신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채 식모살이나 공장 일을 하곤 했다.
산아제한 없이 자녀를 많이 낳던 시절의 일이다.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6.1명. 여성들은 아들이 태어날 때까지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야 했다.
1970년대 초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가족계획 운동이 전개되면서 다산 풍토는 사라졌다. 80년대 중반 합계 출산율은 2명 미만. 자녀가 셋 이상인 부부는 ‘미개인’ 취급을 받을 정도로 가구당 자녀는 둘 아니면 하나로 굳어졌다. 그렇다고 남아선호 사상이 수그러든 것은 아니었다.
자녀는 많아야 둘, 하지만 아들은 필히 있어야 했으니 방법은 하나였다. 태아의 성별을 검사해 여아를 낙태 시키는 것이었다. 매년 수만명의 여아들이 낙태로 생명을 잃었다. 결과는 극심한 성비 불균형. 1980년대 초반 107 정도이던 한국의 출생 성비는 1986년 111.7, 1990년 116.5로 뛰어 올랐다. 출생 성비는 여아 100명 당 남아가 태어나는 숫자로 103~107이 정상이다.
집집마다 태어났다 하면 아들인 기현상이 일어나자 대한가족계획 협회는 표어를 바꾸었다. 1980년대 ‘잘 기른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던 표어는 1990년대 ‘아들바람 부모 세대 짝꿍 없는 우리 세대’로 발전했다. 초등학교 교실마다 남초 현상이 두드러지자 이들이 성인이 되면 신붓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일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200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의 풍경이었다.
한국 통계청이 9일 발표한 ‘2013년 출생 통계’를 보면 한국사회가 드디어 변했다. 남아선호 현상이 사라졌다. 출생 성비가 105.3으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81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여아를 낙태시키지 않고 그대로 낳음으로써 정상 성비가 회복된 것이다.
생명은 하늘이 내리는 선물. 딸이든 아들이든 감사하게 받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그 당연한 일이 현실이 되기까지 실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